기적
참 오래 너를 기다렸다.
아니, 사실은 너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너무 힘들까 봐 마음을 비우려 애썼다.
늦은 결혼, 늦은 나이.
매달 돌아오는 생리와 함께
실망과 기다림이 반복됐다.
한 해 한 해 일을 하며
아빠와 즐겁게 지내면서도
길 가다 마주친 사랑스러운 아기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아빠를 보며
내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리고 슬펐다.
걱정은 했지만
너는 분명 일찍 와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늦게 만난 아빠와의 시간이 너무 행복했고
그 시간도 너무 짧다고 느껴
가끔은 시간이 너무 빨라서 울기도 했다.
그래서 ‘너 없이도 아빠에게 올인하며 살아야지’
스스로 다짐하기도 했다.
시험관이나 병원의 도움을 받게 될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아빠와 인연이 아니어서 너를 못 만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점점 깊어지자 너무 힘들었다.
한바탕 실컷 울고
적극적으로 병원을 다니기로 결심했다.
시험관을 시작하기 전,
유튜브에서 수많은 후기를 찾아보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주사를 맞으며
고통과 눈물을 참아내는 모습들에
긴장도 되었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선생님과 간호사, 약사님들조차
“이 길은 정말 힘드니 신랑에게도 꼭 말하라”라고
권할 만큼 어려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무딘 성격이 아니면서도
주사는 혼자 맞았다.
그게 오히려 덜 무서웠기 때문이다.
매일 이어진 주사와
‘돌 주사’라 불리던 프롤루텍스를 맞을 때도
“약이 좀 안 들어가네?” 정도였고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프롤루텍스의 고통은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주사였다.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아빠에게 괜히 상처를 줄까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도 어느새 무뎌졌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네가
벌써 효자인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필 바쁜 프로젝트가 겹쳤고
너무 춥던 겨울, 왕복 세 시간을 출퇴근해야 했다.
그보다도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가야 해서
일을 빠져야만 했다.
무엇보다 난자 채취 전날,
주사를 맞고 점심시간에 난생처음
두 개의 햄버거를 먹었다가
갑자기 극심한 어지럼과 구토가 찾아와
변기를 잡고 견뎌야 했다.
일주일은 직립보행조차 하지 못했고,
양양할머니가 몰래 집으로 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한 달은 식욕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였다.
힘들면서도, 묘하게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3개월.
누군가는 스무 번도 한다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엄마에게 3kg의 증량을 주었지만
큰 이벤트 없이 넌 한 번에 우리에게 와주었다.
네가 태어나던 그날,
그리고 이렇게 너와 함께 지낸 지 9개월.
내가 태어나 가장 잘한 일,
너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살아왔구나.
참, 기적 같다.
너에게도 우리가 기적 같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