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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곡재 Mar 13. 2022

옥인아파트

2. 전학가던 날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 단풍이 한창이던 가을, 영등포구 노량진에서 종로구 옥인동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번화와 부의 상징인 강남이란 표현 자체가 없었다. 서울의 중심은 사대문 안이고, 그 중에서도 종로였다. 사대문 밖, 그것도 강 건너 노량진에서 종로구로의 입성은 대단한 일이었을 텐데, 그때는 그냥 많은 이사 중의 하나인 이벤트로 생각했다. 


옥인아파트 1동에는 나의 육촌 형님이 살고 계셨는데, 그 육촌 형님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에게는 사촌 형님이었으니 옛날에는 무척 가까운 친적이었고, 더구나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다보니 더 귀한 혈연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육촌 형님과 나의 아버지가 1930년생 말띠 동갑이었다. 아버지와 동갑이신 분을 형이라고 불러야 했으니 무척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이 형님은 2022년 2월 현재 경기도 일산에서 건강하게 살고 계신다.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두 분이 동갑이었는데다가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게 잡혀 헛간에 갇혀있다가 두 분보다 손위이고 좌익이었던 동네분이 인민군 퇴각 즈음 밤에 몰래 풀어주어 생사의 고비를 같이 넘겼다는 인연도 있었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나의 아버지가 결혼할 때 육촌 형님이 함을 지고 나의 어머니 집에 갔다고 했다. 이런 특별한 인연 때문인지 육촌 형님의 부보님 제삿날이면 우리 식구 모두가 출동했었다. 우리가 옥인아파트로 이사한 이유도 순전히 이 육촌 형님이 아버지와 가까웠기 때문이었고, 더구나 이사한 집은 육촌형님의 앞집이었다. 우리집은 111호, 육촌 형님네는 112호.  


이사한 다음날 새 학교에 갔다. 누런 서류봉투 두 개를 들고 엄마가 앞장서고 나와 내 동생이 뒤 따랐다. 내가 앞으로 다닐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20여분 정도 거리에 있는 ㅊㅇ국민학교였다. 대통령이 산다는 청와대에서 걸어서 10분 남짓한 가까운 곳이고, 그래서 당시 대통령의 아들이 나의 국민학교 선배가 되었다.


학교 교문을 지나 교무실에 들어가 전학 서류를 제출하고 새로운 반에 배정될 때까지 교무실 의자에 앉아 두리번거렸다. 서울 중심부에 있는 학교라서 그런지,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전에 다니던 학교보다 훨씬 고급스러워 보였다. 이윽고 이름을 부른다. 나는 키가 크고 영화배우처럼 멋진 담임선생님-구 선생님, 훗날 고입시험 보는 날 시험감독관으로 오셔서 우연히 만났었다-을 따라 교실로 향했다. 앞문을 드르륵 열고 담임 선생님이 들어가고 뒤이어 내가 들어갔다. 교실에 가득한 아이들 눈이 나를 스캔했다. 담임선생님이 간단하게 나를 소개한 후 교실 뒤편 빈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했다. 새로 받은 번호는 78번. 그 땐 서울 국민학교는 어디나 한 반에 80명은 기본이었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고,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아침에 엄마를 따라 온 길을 되돌아 30분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저녁 시간이 지나도 동생이 오지 않았다. 새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전화도 개통이 안 된 상태였고(당시는 이사 후 3일 정도 지나야 전화가 개통되었고, 번호도 새로 부여받았다), 핸드폰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대라 그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둠이 내리자 식구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 등장했던 '유괴'라는 단어도 떠올랐다. 어제 이사와서 오늘 처음 학교에 갔는데, 도대체 어디를 갔을까?

기다리다 지친 식구들이 동생을 찾으러 옥인아파트 언덕 아래까지 내려갔을 즈음 동생이 어떤 아주머니와 함께 나타났다. 헐! 이게 무슨 일?


동생의 담임선생님은 종례시간에  

"얘가 오늘 처음 전학을 와서 이 동네 길을 잘 모르니 누가 같은 동네 살면 집에까지 함께 가면 좋겠는데, 너 집이 어디라고 했지?"

동생은 "산 밑에 있는 아파트요."

선생님은 "누가 이 근처 산 밑 아파트에 살지?"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그래 네가 같이 가면 좋겠다."


그런데 이게 왠걸? ㅊㅇ국민학교 정문에서 학교를 바라보면 뒤로 인왕산이 보이고 오른쪽 산 아래는 청운아파트가 있었고, 왼쪽으로 옥인아파트가 있었다. 두 아파트는 어른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40분 정도는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산 밑에 아파트라는 말에 청운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손을 들었고, 동생은 그 아이를 따라 나섰다. 아파트가 늘어선 위치는 이상했지만 올라가는 언덕도 비슷하고 아파트 색깔도 비슷한지라 끝까지 따라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우리집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아이 또한 옥인아파트의 존재를 몰랐으니 데려다 줄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 아이의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온 후 자초지종을 듣고는 옥인아파트로 찾아오는 길이었다. 물론 당시 우리도 청운아파트의 존재를 몰랐으니 다른 아파트로 갔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이렇게 전학 첫날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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