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것이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이젠 소설가가 되야겠다

by 박희종

글쓰기의 시작은 희곡이었다. 연극을 하던 시절, 연출의 제안으로 처음 썼던 희곡이 무대에 처음 올라갔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노력해서 만들어낸 이야기가 무대에 오르고, 내가 의도한 곳에서 관객들이 웃고 울 때의 카타르시스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다. 그 시절 나는 희곡작가로서 운이 좋았다. 당시에 내가 연극을 하던 곳은 대학의 동아리와 다니던 교회의 청년부였는데, 두 곳 다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활발하게 공연을 하던 곳이었다. 내가 첫 희곡을 써서 창작극을 무대에 올린 후, 다행히도 두 곳 모두 창작극의 가능성을 보았고, 내 작품으로 무대를 만들 기회가 많아졌다. 그래서 그 당시 나의 희곡은 쓰는 데로 무대에 올라갔다. 한 작품 한 작품 무대에 올라가며, 장면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점점 더 익숙하게 되었고, 좋은 기회로 대학로의 무대까지 진출하게 되니 나의 동기부여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때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설레었다. 며칠 밤을 새우고, 몇 번을 고쳐 쓰는 일을 반복해도 나에게는 마냥 즐거운 일이었고, 전혀 피곤하지 않는 신나는 일이었다. 나는 매일매일을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고 정리하며 새로운 작품을 구상했고, 무대에 올릴 기회가 되면 최선을 다해 고쳐 쓰곤 했다. 심지어 공연을 준비하던 중, 현장의 상황에 변수가 생기거나 배우의 입에 대사가 잘 붙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대본을 수정하기도 하고, 새로운 막을 써 내려가기도 했다.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런 시간들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글 쓰는 것이 재미있고 설렐수록 욕심이 나기 시작했고, 나의 연극 활동 영역이 점점 더 프로의 무대로 가까워지고, 그 프로의 무대에 살아남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되자, 더 이상 글쓰기가 설레지 않게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다른 희곡들과 경쟁해야 했고, 공모전에서 낙방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새롭게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의 경우, 그 경쟁이 더욱 치열해서 전문가가 내 시나리오를 읽어주는 기회를 얻는 것마저도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주 멀어져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작사를 시작했을 때 , 나는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내가 쓴 노랫말들이 노래가 되고, 누군가가 불러 음원사이트에 업로드가 되는 경험은 나에게 또 다른 무대가 생긴 느낌이었다. 작사를 시작하던 시기에 나는 마치 오아시스를 만난 사막의 여행자처럼 허겁지겁 글을 쓰곤 했다. 삶에서 느끼는 작은 감성들도 모두 가사로 옮기기 시작했고, 하루에 몇 개씩이나 작사를 해서 작곡가에게 보내곤 했다.

하지만 결국 완성은 나의 몫이 아니었다. 희곡도 시나리오도 작사도 결국은 내가 시작을 할 수는 있어도 마무리는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선택되어야 하고, 그들의 노력이 더해져 마무리되어야 하는 과정들이 나에게는 지속적인 갈증을 만들었다. 물론 그 협업의 과정이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의 글이 작품이 되는 과정에서 나는 여전히 설레었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더 많은 과정에서의 허무함은 나를 또다시 지치게 했다.

그래서 직업과 연관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야의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 완성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고민하고 정리하고 써 내려간 글이 바로 결과물이 되는 과정들은 예전의 글쓰기와는 다른 느낌의 성취감을 주었다. (드디어 출간 작가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브런치를 시작하며 나의 이야기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육아 이야기와 아이와 함께하며 느끼는 감정 등을 정리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부모님의 이야기도 쓰고 있다. 그렇게 쓴 내 글을 사람들이 읽어 주고 공감해주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설레고 있다. 마치 전재산을 주식에 투자해 놓은 사람이 주식 사이트를 들여다보듯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브런치 어플에 들어가서 내 글의 반응을 살피기도 하고, 글을 쓰고 업로드하기도 한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로 살아가고자 하는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소설은 막연한 꿈이자 목적지였다. 그래서 쉽게 시작하기도 어려웠고, 소설을 쓰겠다는 말조차도 하기 부끄러웠었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약 소설을 쓰고, 소설가가 되기 원한다면 지금이 그 시작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글쓰기가 다시 설레고 머릿속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의지가 불타오르는 지금이야 말로 내가 다시 커다란 도전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어제 새로 떠오른 아이템으로 첫 꼭지를 쓰고 와이프에게 내 글을 조심스럽게 보여줬다.


" 그냥 초고고 다듬지도 않은 글인데, 느낌이 어떤지만 좀 봐줘. 그래도 당신은 나보다 소설을 많이 읽으니까."

"소설 같아. 쓱 잘 읽혀. 좋은데"

과장이 없는 담백한 와이프의 저 말은 나에게 충분한 용기가 되었다. 지금은 시작이니까, 어색하지만 않아도, 이상하지만 않아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품에 아이를 안고 와이프와 동네를 산책하며, 새로 쓰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생각한 스토리를 이야기하면 와이프가 의견을 주기도 하고, 와이프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기도 했다. 나는 산책 내내 다시 즐거운 설렘을 느꼈고, 당장 들어가서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불타올랐다.

나는 글 쓰는 것이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완성할 때까지 나는 마음껏 이 설렘을 즐겨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문장은 나의 또 다른 설렘의 시작이 되어주리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국은 도달하게 될 이 시작의 끝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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