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처음 작가라는 말을 해주신 분은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인이다. 그 당시 부임 후 첫 담임을 맡으셨던 선생님은 30대 초반의 음악을 담당하시는 여자분이셨다. 지금으로 말하면 중2병이 빨리 왔는지 나는 1년 동안 참 다양한 사고를 많이 도 쳤었다. 체육시간에 교실에 들어와 도시락을 까먹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학교 밖에 나가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당시 어울리던 말썽쟁이 무리들은 모두 공부도 잘하고 싸움이나 운동도 잘하는 친구들이어서 우리는 항상 반에서 주목받는 존재였고, 그 당시에는 공부를 잘하는 것도 멋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는지 말썽을 피우면서도 시험도 항상 잘 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교내 백일장이 열렸는데, 그때까지는 장래희망이 과학자이던 나는 큰 기대나 흥미 없이 대충 시를 적어 냈었다.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그 백일장에서 금상을 받게 되었고,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언제나처럼 무리들과 어울려 사고를 치고 다녔고, 급기야는 무리 중에 성적이 낮은 한 친구를 위해 컨닝을 도와주는 잘못을 저질렀다. 절대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은 너무도 어이없게 오답까지 다 배껴쓴 친구 때문에 걸리게 되었고, 우리는 아주 굵은 각목으로 꽤 많은 체벌을 받았다.(우리 때는 잘못했을 때는 체벌을 받는 것이 당연했고, 그 어떤 부보님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때 선생님은 우리들을 정말 많이 때리셨지만, 때리시는 내내 눈물을 흘리셨고 나중에 다른 선생님께 듣기로는 학교에서 정학을 주자고 한 것을 담임선생님께서 막아주신 것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담임을 맡으셨던 젊은 선생님이 아이들을 보호하기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더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선생님께서는 따로 불러 면담을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처음 하셨던 말은
"작가는 정직해야 해. 컨닝은 정직하지 못한일이야"
였다. 교내 백일장에서 겨우 상한 번 받은 것으로 선생님은 나에게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 주셨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어색하긴 했지만 싫지 않았다. 선생님의 진심이 통했는지, 내가 철이 들어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그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고 말썽도 피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성장에 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문과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고, 대학에서 연극을 접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희곡도 쓰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동아리와 과에서 공연을 할 때마다 창작극을 할 기회가 많아서 내가 쓴 희곡은 모두 무대에 올라갈 수 있었고, 내 글이 무대에서 배우들을 통해 표현되고, 관객들을 마음을 움직이는 모습에서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의 글에 대한 욕심은 자연스럽게 희곡에서 시나리오로 확대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아이템으로 희곡과 시나리오를 모두 작업하곤 했는데, 희곡과는 다르게 시나리오는 너무 힘든 작업이었다.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글의 양이 많았고(보통 100분 분량을 기준으로 보면 희곡은 40page 내외였지만, 시나리오는 100~120page정도였다.) 무엇보다도 내 시나리오가 영화가 될 가능성이 너무 적었을 뿐만 아니라 100page가 넘는 시나리오를 읽어줄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 시나리오가 재미있는지 헛점은 없는지 완성도는 얼만큼인지 객과적인 평가를 받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 당시에는 시나리오 공모전이 많이 있었다. 나는 쓰는 시나리오마다 평가를 받기 위해 모든 공모전에 지원했었고, 매번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점점 나 혼자만의 작업이었고, 바다 위에 등대를 찾아 떠다니는 작은 통통배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열정과 희곡에서 맛보았던 짜릿함이 나의 의지를 여전히 불태우고 있었고, 어느새 나는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시나리오 공모전에는 보통 시놉시스를 첨부하게 되어 있는데, 시놉시스는 극의 줄거리를 말한다. 공모전에서 시놉시스를 받는다는 것은 결국 시나리오를 다 읽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 상황을 이해하면서부터 나는 시놉시스에 더 많은 공을 들이게 되고 가끔은 내가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임팩트가 있어 보이는 시놉시스를 먼저 써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시나리오에 대한 열정과 공모전에 대한 기대가 한창이던 시기에 나는 시나리오 수업을 듣게 되었다. 막연하게 시나리오 작법 책으로만 배우던 나에게 제대로 시나리오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고, 정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즐겁게 수업을 들었다.
보통 과제나 시험은 단편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거나 다른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계시던 교수님은 수업과 별도로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있는 학생들은 가지고 와도 좋다고 말씀하셨었다. 나는 당연히 아주 기쁜 마음으로 내가 썼던 장편 시나리오를 출력해서 가져다 드리고 평가를 부탁드렸다. 웃으면서 받아주신 교수님은 잘 읽어보고 평을 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 글을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에, 특히 현직에 있는 전문가가 읽어준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드린 지 한 달이 지나도 교수님께서는 특별한 코멘트가 없으셨고, 그 사이에 1번의 과제와 중간고사가 지나가고 있었다. 조급해진 내가 먼저 가서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교수님은 수업이 끝나고 남으라고 했다.
"내가 너무 늦었지? 기다리고 있는 건 아는데, 나도 시간이 좀 필요했어.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를 읽으려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2시간은 필요해. 적어도 두 번은 꼼꼼하게 읽어봐야 하니까. 근데 내가 요즘 좀 바빠서 온전히 2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어. 겨우 시간이 나서 지난주에야 희종 군 시나리오를 읽어 봤어"
내 시나리오에 대한 평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많이 지적해 주셨고, 전체적인 아이디어나 구성은 칭찬해 주셨다. 나는 해주신 조언을 잘 받아서 고쳐쓰기 시작했고, 실제로 영화화되지는 못했지만 시나리오 공모전에 최종 심사까지는 올라갔다는 연락도 받아보게 되었다.
교수님의 조언으로 내 시나리오가 좋아진 것도 감사한 일이고, 그로 인해 최종 심사까지도 올라가 본 것도 뜻깊은 경험이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제일 감사했던 것은 내 글을 온전하게 집중해서 2번이나 읽어주신 그 마음이었다.
작가 지망생의 글은 아무도 쉽게 읽어주려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지만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여러 가지 핑계로 읽는 것을 미루거나, 읽어보겠다고 하지만 나중에 물어보면 바쁘다는 대답을 많이 듣는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나의 글을 읽어주고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기 바라는 것이 엄청난 욕심일 수도 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닌데, 심지어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에서 내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이 감사하다. 내 글을 읽은 사람이 10만 명이 넘었을 때, 나의 구독자가 100명을 넘었을 때 나는 와이프와 축하파티를 했다. 나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글을 구독해주시는 196명의 모든 분들과 나의 글에 라이키와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댓글을 써주신 분들께 "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자주 하게 된다. )
나의 와이프는 내가 쓴 글을 읽으며, 항상 냉철한 평가를 해준다.
"문맥이 이상해"
"오타 났어"
"맞춤법 실수했어!"
본인은 내 글을 읽으며 지적을 하는 것이 속상하고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성격이 꼼꼼한 편이라 그냥 넘어가지를 못한다) 하지만 나는 너무 감사하다. 내가 쓴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는 사람이 바로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남은 삶은 작가로 살고 싶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전업작가로서의 삶을 욕심부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계속 글을 쓰고 살고 싶다. 그리고 이왕이면 내 글이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고, 좋은 영화나 공연으로 이어져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단 한분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계속 글을 쓸 것 같다. 나에게는 그 한 명의 독자도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