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지나고, 연휴와 이어진 주말마저 끝이 났다. 나는 연휴기간 동안 짧은 여행을 한번 다녀왔고, 과수원을 하시는 장인어른을 좀 도와드렸으며, 아이와 산책도 좀 하고, 아이의 방을 꾸며주기 위한 준비도 좀 했다. 아! 그 사이에 아버지의 제사도 있었다. 언제나처럼 연휴는 기다리던 시간과는 다르게 참 빠르게 지나갔고, 앞으로 10월까지는 없을 공휴일 덕에 남은 연차를 세며 아쉬워하고 있다.
연휴 전날 우리 부문의 부문장님께서는 전체 티타임을 소집하시고 각자의 연휴 계획을 물어보셨다. 강압적이거나 취조의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편하게 자신들의 연휴 계획들을 이야기했는데, 미혼자가 더 많다 보니 아주 다양한 계획들이 나왔다. 직장인들에게 주어진 명절도 휴가도 아닌 긴 연휴를 그들의 모든 창의력과 추진력을 발휘해서 엄청난 추억을 만들겠다라는 의지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부문장님께서는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안전하게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당부를 하셨다.
나는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급하게 처갓댁 식구들과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허들은 장인어른의 과수원 일이었다. 직장인들과는 다르게 주말이나 공휴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고, 때마침 작물을 새로 심은 해여서,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다. 그러니 모두가 연휴라고 휴가 계획을 세워도,아버지에게는 남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제네 가족과 여행 계획을 세우는 내내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득했다. 내심 함께 가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도 보였고, 손주들을 워낙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마음도 알고 있었기에 되도록이면 함께 가면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아버지, 제가 여행 다녀와서 나머지 기간 동안 많이 도와드릴게요. 그래도 같이 하면 훨씬 빨리 끝나잖아요."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행을 함께 가시기로 하셨고, 여행은 서로 부담스럽지 않게 2박 3일만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의 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 좋았다. 가는 길에 들렸던, 맛있는 막국수와 저녁으로 먹었던 닭갈비, 놀러 갔던 알파카 월드와 근사한 전망대의 커피숍, 함께 장을 봐서 구워 먹었던 저녁의 바비큐 까지. 심지어 마지막 날에는 어버이날 선물도 살 겸 아웃렛에 들렸는데 그곳에서 다행히도 어머니가 맘에 들어하시는 선글라스도 사고, 아버지가 맘에 들어하시는 봄 점퍼도 살 수 있었다.
( 여행 내내 마스크도 꼭 쓰고 다니고, 손소독제도 자주 하고 다녔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다니다 보니 최대한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 모든 여행이 누군가의 근무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때 창업을 하고 장사를 하던 시절. 또래의 친구들이 열광하는 불금과 주말, 연휴와 휴가철,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 각종 공휴일과 방학. 이 모든 날들이 나에게는 장사를 해야 하는 날이고, 평소보다 더 바쁠 날이고, 그래서 더 두려운 날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매출이 더 오르고 나에게 금전적인 수익이 더 많이 생기는 것은 맞지만, 예를 들어 비 오는 주말, 엄청 추운 연휴, 태풍이 오는 공휴일, 장마철의 방학 등. 손님도 오지 않을 문제의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들은 문을 닫아야 하는지 아니면 열어야 하는지도 선택하기 어려워지곤 했다. 맘 같아서야
" 야 비도 오는데 쿨하게 문 닫고, 어디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일차적으로 가게에 들어가는 고정비(월세, 수도 전기세, 인건비, 식재료 비용 등)는 가게를 쉬어도 발생하게 된다. 심지어 기준 없이 내 상황에 따라 내 맘대로 문을 열고 닫게 되면, 그로 인해 왔다가 돌아가는 고객들은 나처럼 쿨하지 않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곤 했다. 결국 대부분은 맘 편히 쉬지도 못하고 가게문을 열어 몇 없는 손님을 받곤 했었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절대 녹록하지 않다. 하루 종일 눌러오는 업무의 강한 압박과 회사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치지고 무너져가는 내 영혼과 자존감들, 퇴근을 하고도 자유롭지 않은 나의 카카오톡과 자기 전에 떠오르는 직장 상사들의 얼굴들. 직장생활은 우리의 삶을 멍들게 하기도 하고, 나를 더 빠르게 늙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직장들을 쉽게 떠나니 못하는 이유들이 있다. 매달 돌아오는 월급날과 스쳐 지나가는 월급들. 그러 인해 내가 또 구매할 수 있는 수많은 아이템들과 내가 꿈꾸는 근사한 여행들.
퇴근이 있는 것, 주말이 있는 것, 공휴일이 있고, 휴가가 있고, 명절과 연휴가 있는 것, 그래서 남들이 쉴 때 함께 쉬고, 함께 여행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것.
결국, 특별하지는 않아도 평범하게나마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것들이 소위 말하는 더럽고 치사해도 회사를 다니게 만드는 이유들이 되는 것이다.
아마 그 평범함의 부재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익숙해진 평범함은 이미 내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둘러봐도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우리와 같은 평범함을 누리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경험해보지 않고서도 쉽게 관두지 못하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이, 무의식적으로도 그 부재의 공포를 알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회사를 관둘 수많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래도 관두지 못하는 수많은 핑계도 있다. 내가 회사를 관두는 이유가 명확한 계획과 비전 때문이 아니라면,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과감하게 던지는 사직서가 아니라면, 한동안은 조금 비루할지라도 구구절절한 핑계들로 넘겨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에겐 그럴만한 충분한 명분들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