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괜찮아"에 마취되어 있다.

슬기로운 환자생활

by 박희종

교육하다가 손을 베었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깊게 베인 상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찢어진 힘줄 두 곳을 꿰매고 봉합하는 수술은 한 시간 만에 끝났다. 그리고 이 수술은 나에게는 참 신기한 경험을 남겨주었다.


예약된 수술 시간이 되자 간호사님이 오셨다. 혈압과 체온을 확인하고 수술실로 이동하는 침대로 옮겨 누웠다. 베개도 없는 침대에 누워 병원 천장을 바라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기사님은 환자를 수술실로 이동시켜주시는 일만 하시는 분 같았다. 그분의 밀어주시는 침대를 타고 수술실로 가는 길에 병원천장만 바라보는데, 조명도 지나가고, 비상구 표지판도 지나가고, 인터넷 수신기에, 스프링쿨러까지 보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타고 오면서도 뭔가 울렁거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는 내 머리를 더 띵하고 어지럽게 했다. 그렇게 도착한 수술실에서는 수술실 간호사님께서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어디 수술하시는 거죠?"


여러 번의 확인을 하고 나서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심박수와 혈압을 모니터링할 기계들이 내 몸에 세팅되고 마취과 의사가 와서 마취를 시작했다.


"따끔합니다. 따끔"


네 번째 손가락만 수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왼손만 부분마취를 하는 나는 어깨 쪽으로 주사를 놓는 것 같았다.


"팔이 좀 찌릿할 겁니다"


마취과 의사의 말과 동시에 혈관으로 약물이 들어가는 느낌이 나며, 그 순서대로 찌릿함이 이어졌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어깨부터 저릿저릿하면서 감각이 없어졌다. 이후 나이가 지긋한 남자간호사님께서 오셔서 수술 준비를 하셨는데, 참 재미있게 설명해주셨다.


"지금 소독을 하고 있어요. 아프면 말씀해주세요."


"아직 감각이 있어요. 아프진 않은데, 차가워요."


"원래 차가운 건 느껴져요. 지금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있는데, 이게 원래 엄청 아픈 건데, 안 아프죠?그럼 잘된 거예요."


어깨부터 시작된 마취는 수술 시간 내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내 통증을 잘 숨겼다. 아마도 마취는 약으로 내 통증을 잠시 숨겨놓은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살을 찢는다는 것은 당연히 아픈 것이니까.


얼마 전에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다. 아들, 손녀, 며느리와 함께 여행을 떠나신 어머니는 너무 즐거워하셨고, 행복해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여행 내내 본인의 의견을 잘 얘기하지 않으셨다.


"엄마. 저녁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어요?"


"없어! 난 다 괜찮으니까 그냥 니네 먹고 싶은거 먹어"


어머니는 항상 우리의 의견에 따라 움직이셨고, 심지어 본인이 아이를 봐줄테니 둘이 데이트를 하고 오라고 하시는 엄청난 배려까지 해주셨다. 아마도 세 자녀의 어머니로, 맏며느리로 일생을 살아오신 어머니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괜찮아"라는 말에 서서히 마취되고 있다. 어른이 되고, 직원이 되고, 부모가 되면서, 나의 의지나 생각, 혹은 나의 불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점점 뜸해지고 잃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마취는 통증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단지 통증을 숨기고 낫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숨긴다고 해서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그리고 시간만 지난다고 진짜 나아질까?


"마취는 언제 풀리나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5~6시간이면 풀려요."


아무런 감각도 없는 내 왼쪽 팔은 6시간이면 모두 풀릴 것이다. 그런데 많은 책임과 역할에, 그리고 수많은 이해와 관계에 숨겨진 우리의 "괜찮지" 않은 마음은 언제 풀릴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꾸 "괜찮아"라는 말로 자꾸 자신의 마음을 마취시키고 있다.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 마음과 하는 숨박꼭질에서 항상 술래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겁내지 말자.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왜 감추려 하는지.


우리의 마취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 순간부터 서서히 풀리게 될 것입니다.


" 난 괜찮지 않아"


마취가 풀리면 분명히 아플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관계들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맞이하는 고통은 우리에게 새로운 행복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숨어있던 친구들이 나오면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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