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의 계절이 돌아왔다. 팀장인 나는 1년 동안 열심히 해온 직원들의 성과기술서를 받아야 하고 그 내용들을 평가해서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는 KPI 같은 평가 시스템이 아닌 각자의 직무기술서를 바탕으로 평가자들이 각 구성원들의 평가를 판단하게 된다. 같은 부문 안에서 다른 팀과 함께 평가를 진행하다 보니 팀장들은 자기 인원들에 대한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 치열한 눈치 싸움이 이뤄지고, 승진까지 걸려있는 경우에는 더욱 전쟁터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렇게 다른 팀과 정해진 등급을 위한 싸움이 시작되는 자리에서는 팀원들이 적은 성과기술서가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팀원들에게 적는 방법을 미리 교육하기도 하고, 나는 아는데 그들이 놓친 성과나 장점들을 더 잘 설명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직장생활은 냉정하기에 상대평가로 인한 차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아무리 모두 다 열심히 일했다고 해도 나는 그 안에서 각기 다른 평가들을 주어야만 한다.
매년 팀원들을 평가하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어느 조직이든 3가지 부류의 구성원으로 나뉜다는 생각이 든다.
1. 이미 겉으로 의지와 욕심이 보이는 직원 - 그들은 그들이 보이는 성과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맘때가 되면 자신이 그간 해온 성과에 대한 어필을 하는 데 능하다. 특히,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적극성이 뛰어나다 보니 조금은 불합리한 일이나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기본적으로 업무에 대한 의지도 높아서 새로운 일을 찾아내거나 기존의 관행을 바꾸고 새로운 시스템을 찾아내는 것도 잘한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영악한 모습이 나타나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그렇게 눈에 띄는 일이 아니면 회피하려는 경향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역량이나 성과는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조직 내의 유대감이 덜하고, 자존심과 자만심이 높은 경우가 많다.
2. 업무에 대한 책임감으로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하는 직원 - 이 직원들의 경우는 조직 내에서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업무들을 담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항상 반복되는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데, 그 업무에서 큰 이슈가 없다면 상사들이 관심도 적기 때문에 이 시기가 되면 참 안타까운 경우들이 발생한다. 1년 동안 눈에 띄는 커다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그 결과가 명확하게 드러난 직원들이 본인에 비해 더 큰 주목을 받는 대신, 본인이 하고 있는 바탕이 되는 업무들은 그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항상 묵묵히 그 자리에서 맡은 업무를 수행해나가다 보니 그들의 존재자체를 부각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들의 묵묵함으로 인해서 업무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그로 인해 훨씬 효율적인 업무가 진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들이 자리를 비우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에 들어갔을 때 많은 문제들이 발생되는 경우가 많다.
3. 업무나 성과에 관심이 없는(혹은 없는 척하는) 직원 - 이들의 경우는 업무태도가 기본적으로는 수동적이다.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하지 않고,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회의나 어떤 이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어필하지도 않고, 주관적인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의 피해에 대해서는 민감한 경우들이 있어서, 야근이나 주말근무, 출장이나 외근에 있어서 자신이 남들과 다른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에는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성과에 연연하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다른 직원들의 행동이나 태도를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자신은 자신의 일만 하면 된다는 자기 합리화를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자신의 평가가 좋지 않거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낮은 평가가 이뤄지면 직접적으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조직 자체에 대한 비난이나 불평을 지속적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나는 평가자로서 항상 이 3가지 부류의 직원들을 직면해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들에게 어떤 평가결과를 주고, 그 결과를 이해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이 생긴다. 내년에도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1번 직원들의 사기를 꺽지 않아야 하며, 2번 직원들의 노고를 알아주어야 하고, 3번 직원들의 불만을 최소화해야 한다. 조직의 관리자로서 이런 상황에 직면할 때면 버스에 앉아 있는데, 할머니와 임산부와 다리가 다친 사람이 한 번에 내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아직도 초보인 조직의 관리자로써 나에게 정답은 없다. 나의 상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그들의 입장에서 같은 고민들을 하고 있기에 답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올해도 나는 고민 끝에 정해진 평가 결과를 나누고 있고, 그 최종 결과가 나오면 그들에게 죄인의 입장으로 무엇인가를 해명하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다만,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느끼고 있는 것이 있다. 결국, 다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을 때는 어떻게 하면 나의 능력을 더 보여줄까? 어떻게 나의 성과를 들어낼까? 고민하고 아둥거렸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보니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다 보이더라는 것이다. 굳이 생색내지 않아도 업무 능력이 좋고,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직원은 그들의 열정이 후광으로 빛나게 되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해주는 직원들은 별일 없는 사무실에서 든든한 기둥으로 보인다. 눈치를 보며 최소한의 책임만을 이행하고 있는 직원들도 모니터에 가려져있어도 그들이 하는 딴짓이나 딴생각들이 훤히 드러난다.
그러니 아둥댈 필요가 없다.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바보 같고 미련해 보이는 상사라도 다 알고 있다. 물론 알고 있다고 내가 모두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몰라서 내가 피해를 보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비록 내가 받은 결과가 내 노력이나 능력에 비해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어쩌면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후한 점수를 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평가과 연봉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진급은 빠를수록 좋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면 더더욱 기분이 좋다. 하지만 회사는 냉정하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급여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운칠기삼이라는 말도 있지만, 길지 않은 직장생활을 해본 결과 운만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항상 길게 가지 못했다.
올 연말 어떤 평가가 그대에게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그 결과가 어떻건 모두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으며, 기회가 되고, 동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좋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될 것이고, 나쁘면 그 나쁨을 달게 받아들이고 내년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성과를 받고 내년을 기약한다는 것은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고, 아직 갈 길은 멀다는 뜻이며, 내가 잘하고 있다면 분명히 나를 제대로 봐주는 사람을 나타난다는 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