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

능력보다 의지가 앞서는 철없는 아빠 작가

by 박희종

나는 아이디어가 많은 편이다. 학창 시절 각종 장기자랑이나 공모전에서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 새로운 사업이나 기발한 아이템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았다.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를 작당 모의하고, 사람들을 꼬드겨서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삶의 대표적인 시기가 나의 20대였고, 나는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하며 살았다. 여행은 언제나 수시로 떠나곤 했고, 동아리에서, 교회에서, 극단에서 다양한 창작극을 올리곤 했다. 공연에서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아 희곡은 모두 내가 썼으며, 가끔 연출도 하고, 배우도 하고, 작곡도 흉내 낸 적이 있다. 창업도 해보고, 클럽에서 파티를 열어본 적도 있다. 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 좋았고, 항상 겁이 없었다. 그냥 잘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 삶에 영향을 줄만큼 치명적인 실패나 실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


30대가 되어 내가 직장인이 되었을 때, 나에게는 겁이 아니라, 제약이 생겼다. 하고 싶다고 모두 할 수 없는 상황들, 막무가내로 도전할 수 없는 입장들, 그런 것들이 나를 조금 더 주춤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기회들이 날아갔다. 지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베이커리 업계에서 처음 치킨 업계로 이직을 했을 때, 배달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냥 혼자서 잡아봤던 사업계획이 배달 대행업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에도 배달 대행업이 존재하고는 있었지만, 전문적으로 관리를 하거나 별도의 기업의 형태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당시에 전 직장에 있던 선후배들에게 사업계획서를 보여주고 함께 준비해볼 것에 대한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모두 다 쉽게 도전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역할들에 묶여 있었다. 결국 그 사업 아이템은 그렇게 조용히 잊혀 갔고, 몇 년 후에 다양한 회사에서 배달 대행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배달업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다시 "동선 공유 서비스" 아이디어를 정리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이동하는 동선 내에 무엇인가를 배달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면, 예를 들어 퇴근길에 역 앞에 있는 치킨을 픽업해서 우리 옆 동에 배달해줌으로 부가수입일 얻는 시스템이었다. 그나마 그 시기에는 내가 회사에서의 입지가 새로운 사업을 제안을 할 수는 있는 상태여서, 그 당시의 나의 직속 본부장님에게 제안서를 보여 드렸다. 그는 분명히 너무 좋은 아이디어지만, 지금 실행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말로, 나의 아이디어를 반려했고, 그 이후에도 회사 내 아이디어 공모전에 제출했지만 선택을 받지는 못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또 그 아이디어를 포기했고, 역시 얼마 후 배민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나는 지금 그 아이디어들이 원래 나의 것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실행되지 못하면 그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 중에 더 의지가 높은 사람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사업 아이템들은 나에게 단순히 떠오른 새로운 생각이었을 뿐, 그것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노력은 거기까지만 닿았고,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나는 지금 2번째 책의 출간을 준비 중이다. 2번째 책은 첫 책과는 장르가 달라서 내 이름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소설가의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은 어쨌든 다음 달이면 이뤄진다. 나의 첫 장편소설이 내가 흘려보낸 아이디어들과 달랐던 점은 이루고자 하는 의지의 차이였다. 나는 머릿속의 스토리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바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소설의 시놉시스를 간단히 정리하고, 아내에게 그리고 출판사 편집장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나서부터는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써본 적은 있었어도, 장편소설은 처음 써보는 내가 처음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내 생각은 그냥 써보면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소설가로서 가능성이 있는지. 이 이야기가 독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이 있는지. 이 모든 것은 결국 써봐야 아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6개월이 넘게 걸려서 드디어 탈고를 했다. 실은 나는 아직 작가로서 그럴싸한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아직 나의 글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언제까지 내 글이 사람들에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나의 능력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마음.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 그것이 결국 결과물들은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세계는 그 경계가 분명하다.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과 그것들을 소비하는 사람. 대부분의 사람은 소수가 만들어 내는 창작물을 소비한다. 나는 누군가의 창작물을 소비하며 살다가 나도 창작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사람이고, 내 창작물의 가치보다 내가 창작을 하고 싶다는 마음과 창작을 한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소수의 창작자가 되어가고 있다.


성과는 어쩌면 이제 나의 능력밖에 일일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지만, 나만의 능력으로 결과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하는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느냐의 문제는, 내가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일에 대한 의지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두 돌도 되지 않은 우리 딸이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내가 할 거야. 내가 할 거야."


나는 우리 딸도 의지가 높은 아이로 컸으면 한다. 어떤 일이 하고 싶어 졌을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상황에 대한 걱정들보다, 본인이 그것을 얼마나 하고 싶은지를 잘 들여다보고 용기 있게 도전해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래야 그 아이도 조금은 더 신나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빠가 세상을 신나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튼 소설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