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튼 소설가가 되고 싶다

첫 장편소설을 탈고했다.

by 박희종

첫 소설을 탈고했다. 아내에게 말했다.

"나 탈고했어."

"어때? 맘에 들어?"

"소설보단 내가 기특해."

초등학교 때는 세계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그때는 미국 대통령이 세계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서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과학반에 들어가 새로운 발명품을 만드는 것이 좋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나에게 이과가 안 어울린다는 것을 알았다. PD가 되고 싶었다. 아니면 카피라이터? 그렇게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가서 PD를 꿈꿨지만, 중간에 연극에 빠졌다. 그때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쓴 희곡이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짜릿했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영화가 하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드라마 단막극 최종 심사까지 올라가 본 게 나의 영광의 끝이다. 그리고 지금은 직장인이다. 다행히도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나름의 성과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게 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 글을 쓰며 밥을 먹고살고 싶다. 당장의 꿈이 아니라, 진행형인 꿈이다. 직장생활을 잘 마치고 나면, 조금은 먼 미래에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 오면, 그때는 고민하지 않고 전업작가로 살고 싶다. 그래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육아의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직장생활의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창업에 관련 책을 출간하게 된 건 운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어쩌면 무관해 보이는 내 어린 시절의 모든 꿈들이 마치 지금의 나의 꿈으로 합체가 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세계 대통령이 되는 것도, 정말 좋은 글을 쓰게 되면 그만큼의 명성을 얻을 수도 있고, 과학자나 작가나 인간을 연구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다. PD나 카피라이터나 희곡작가나 시나리오 작가나 결국은 지금의 내 꿈으로 오는 징검다리 거나 옆에 나란히 서있는 꿈들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로 했다. 우연히 본 타운하우스의 광고지가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아내에게 술주정하듯이 풀어놓은 이야기가 시놉시스가 되었다.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서 휴대폰으로 1편을 쓰기 시작했고, 그 글을 읽은 아내의

"오. 소설 같다. 잘 읽혀."

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2편, 3편을 이어 갔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 주에 마지막 편과 에필로그까지 완성했다. 후기나 내용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나에게는 완성을 시킨 마지막 마침표가 훨씬 중요하다. 그 마침표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나 스스로에게는 소설가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제 첫 작품이고, 인정받을 수 없는 서툰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우선 시작은 했고, 사람들에게 보여줬고, 결국 끝을 맺었다. 나는 그 소설을 토양으로 삼아, 이 이야기를 희곡으로도 바꾸고, 시나리오로도 바꿀 것이다. 이 작품이 영화화가 된다면, 연출을 해줬으면 하는 감독님도, 각 역할의 주연배우들도, 음악감독님도 생각해뒀다. 나는 원래 낙천적이고, 공상을 좋아하고, 겁 없는 초보 작가니까. 상상 정도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난 여튼 그렇다.

첫 작품의 탈고는 벌써 2번째 작품의 시놉시스를 준비하게 해 주었고, 시작하면 마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더해 주었다. 난 급하지 않다. 20대처럼 불안하지도 않고, 처절하지도 않다. 나에게는 직장이 있고, 그 직장 생활이 아직은 좀 더 남은 것 같기 때문이다.(물론, 사람일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 여튼 지금 하는 일도 아주 좋아하는 일이라 걱정이 덜하다.) 그리고 그 남은 직장 생활을 하며,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내 삶을 관찰하고 돌아보면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그러니 5년 후여도 좋고, 10년 후여도 좋다. 뭐 영영 인정받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성공하기 위해서 글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을 성공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주구장창 쓰다 보면 내 글도 점점 좋아지지 않겠는가? 적어도 내가 익어가는 것만큼은 말이다.

40대에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아주 많이 바쁜 직장인이고, 육아에 푹 쩔어있는 아빠고, 과수원집 큰 사위이자, 홀어머니를 살펴야 하는 늦둥이 막내아들인데도 말이다. 나에게는 꿈을 잊은 척하고 살만한 핑곗거리는 차고 넘치게 많고, 도망가고 숨을 만한 구석도 천지삐가리다. 하지만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 그래서 핑계보다는 짬을 찾아내고, 도망보다는 도전을 쫒아다니고, 한숨보다는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뭐 실패하면 어떤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되지. 팔지만 않으면 결코 손실이 아닌 주식 잔고처럼 말이다.

여튼 난 소설가가 되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지금 부끄럽지 않게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