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에 빠지는 날이 있다. 오늘 하루 정신없이 살아왔는데 어떻게 지나간 건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은 고되고 힘들지만 지나간 날들을 모아 생각해보면 힘든 기억은 남아도 세세한 기억은 사라져 있다. 아마도 하루하루가 비슷하기도 하고 힘들다는 나의 감정에 갇혀있기도 해서 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정신없이 흘러간다. 아침에 눈을 떠서 꼭 가야만 하는 곳이 있고 그곳을 향하기 전까지 준비해야 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 이제 시작한 사회초년생은 초년생대로 아직은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은 싱글대로 결혼을 하고 육아까지 함께 하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정신없는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여유롭다고 부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은 결국 내가 경험하는 이 현실이 전부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겹고 어렵다. 물론 그 삶의 과정들이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어렵게 합격한 첫 회사의 출근길, 열심히 노력해서 조금씩 인정받고 있는 발걸음, 아침마다 자녀의 배웅을 받으며 시작하는 하루, 보람 있고 행복한 시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이 공허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머릿속에 들어온 이 질문을 누가 쉽게 대답할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삶이 나의 노력, 소중한 추억, 행복을 주는 존재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해서,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그들의 심리적인 부분들을 분석하곤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 중에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일수록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양보하며 희생했던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삶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사라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존재는 그들의 이름, 그들의 자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할로 그들의 책임으로 그들에게 의지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간혹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하지만 조금만 깊이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보면 결국 저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공허함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 분들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한다.
"한 달의 수입 중에서 온전히 본인 스스로만을 위해 쓰는 돈이 얼마나 됩니까?"
"한 달 중에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쓴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대부분은 오래 계산해보고 생각해보지 않는다. 왜냐면 생각해보나 마나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삶 대부분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버는 데 소비되고 있고, 내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시간은 그만큼 가족을 위해서 소비되고 있는데, 정작 그 모든 주체인 나를 위해 온전히 소비되는 시간이나 돈은 없다는 것이 결국 그들의 공허함의 이유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불만이 없다. 자녀들이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보람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만약에 나의 금전적 시간적 희생을 받아들이는 대상이 이 희생에 대하여 분명히 인지하고 이해하고 감사해한다면, 더 나아가 보답을 하고자 생각하고 노력한다면 충분한 의미가 될 수도 있고, 허무함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희생이 연속되는 순간 당연한 것으로 인지 된다. 심지어 그 역할에 대한 당연한 책임이라고 인지하게 된다면 스스로 그 역할의 무게라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 개인의 선택적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모든 희생은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희생을 마냥 즐기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상황에서 심리분석을 함께 진행하다 보면,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자신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본인이 원하는 취미생활을 맘껏 즐기고 본인을 위한 소비에 더욱 집중하고, 누구보다 인생에서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많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다"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저 삶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저렇게 살아보지 못한 아쉬움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러한 삶의 태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다. 시작은 누군가를 위한 희생으로 시작되었고, 나의 본성을 참거나 숨기는 것이었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스스로의 자아가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 이제 나의 삶을 살아가고자 큰 결심을 한다고 해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어머니 역시 희생이 당연시되어 온 사람이다.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 세 아이의 엄마로 경제 능력이 좋지 않은 아버지의 짐까지 나눠지셨던 워킹맘으로 한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이러한 나의 어머니가 자아를 잃으신 것은 아주 사소한 상황에서 알 수 있었다.
" 엄마 우리 오늘 저녁 나가서 먹어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 난 먹고 싶은 거 없어.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이 질문과 답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내가 30대가 되기 전까지 외식 메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항상 오가던 대화였다. 철이 없던 시절. 저 대답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정말 내가 먹고 싶던 것을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먹고 싶어 하던 것을 주로 먹으러 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저 대답의 의미가 그동안 포기해오신 어머니의 자아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난 정말 많은 질문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 엄마 삼겹살 먹으러 갈까?"
"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난 아무거나 괜찮아 "
" 엄마 그럼 회 먹으러 갈까"
"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 엄마 주꾸미 볶음 먹으러 갈까?"
처음 어머니에게 질문을 이어가기 시작할 때는 스무고개 정도 했던 것 같다. 정말 집요하게 계속 질문을 이어가다 보니 돌고 돌아 어머니의 마음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 그럼 주꾸미 먹던가 "
감춘다고 해서 모른척한다고 해서 잘 참는다고 해서 나의 자아가 정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너무 꺼내지 않아서 찾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것이지 그래서 한번 수줍게 나오고 나서도 다시 숨어버리는 것뿐이지 있다. 존재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내가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노래의 가사다. 그 당시에는 그저 멋있게 만들려고 한 그럴싸한 유행가 가사라고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렵고 힘든 질문이다.
"난 누구인가?"
우리가 어릴 때 자기소개는 이름과 나이이면 됐다.
"5살 박희종이요"
학교에 들어가면 조금 더 는다
"종암 국민학교 1학년 3반 박희종입니다 "
그러다 대학에 가면 나의 전공이 나의 소개가 되고, 직업을 갖게 되면 나의 직업이 나의 소개가 된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학교가 내가 하는 전공이 나의 직업이 정말 나를 다 설명할 수 있나? 그것만으로는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기에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나 스스로도 내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스스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난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1) 내가 좋아하는 것은?
2) 내가 제일 행복한 순간들은?
3)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것은?
4) 내가 가고 싶은 곳은?
5) 내가 하고 싶은 것은?
6) 내가 사고 싶은 것은?
7) 내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은?
8) 내가 싫어하는 것은?
9) 내가 참기 힘든 것은?
10)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11)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12) 내가 가장 버리고 싶은 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질문은 하나씩 답을 채우다 보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그 질문과 답들이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여 줄 텐데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면해야 한다. 나를 이렇게 만든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 스스로 그래야 남은 삶을 다르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는 솔직하게 어렵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온전히 나의 모습을 대면하고 알아야 한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이 질문의 대답을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내가 나에게 던지는 스무고개 그리고 그 한 고개 한 고개 답을 찾아야만 우리가 바라는 곳도 알 수 있고 그곳을 향 할 수도 있고, 도착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