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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Mar 06. 2020

나는 포도밭 큰사위다

휙휙소리나는 일꾼

 나는 포도밭 큰사위다. 아버지는 주로 포도와 사과를 주로 하시는 작은 농장을 운영하고 계신다.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기 때문에 보통 때는 주로 혼자 일을 하시지만 시기에 따라 일손이 부족할 때는 사람을 쓰기도 하시고, 주변에 지인들께서 많이 도와주시기도 하신다. 내가 처음 처갓댁에 인사를 드리고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 와이프는 미안한 듯이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는 늦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엄청 바빠. 그래서 그때는 어디 놀러 가거나 그런 거 못하고 웬만하면 과수원에 가서 일 도와드려야 해. 괜찮아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전혀 싫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서울에 살다 보니 가끔 명절에 아버지 따라서 시골에 가면 아버지와 함께했던 감따고 밤 줍는 일들이 참 재미있고 좋았었다. 그리고 원래 몸 쓰거나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보니 과수원의 일을 도와드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그렇게 결혼하기 전부터 가끔 주말에 가서 일을 도와드렸다. 내가 포도밭사위가 되서 제일 좋은 점은 정말 과일부터 시작해서 각종 신선한 야채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경험을 해본 사람들을 알겠지만 과일을 마트에서 사 먹는 과 과수원에서 바로 따먹는 것은 맛이 전혀 다르다. 나는 원래 포도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장가를 가고 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되었다. 그렇게 맛있는 과일과 야채들을 실컷 먹으면서 내가 도와드리는 일은 막상 대단한 일들이 아니었다. 하다 보니 농사일이라는 것이 막상 힘이 많이 들거나 고된 일이라기보다 일손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일이라는 것 자체가 그날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보니 혼자서는 도저히 물리적으로 안 되는 경우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기술도 경험도 없는 초보 일꾼이다 보니 주로 아버지가 하시는 일의 보조일을 하거나 힘쓰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내가 키가 큰 편이다 보니 높은 곳에 일을 담당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과수원을 관리하시는 아버지 머릿속에는 그날그날 해야 할 일들이 많으시기 때문에 당연히 바쁘게 움직이실 수밖에 없고, 나는 그중에서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들만 하다 보면 정작 내가 간다고 해도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대로 혼자 할 수 없는 일 혹은 여럿이 하면 훨씬 일찍 끝낼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나와 동서의 도움이 아버지에게는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막상 가서 일을 돕다보면 내가 도와드리는 일은 잠깐잠깐이고 틈틈이 아버지와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제철과일들을 바로 수확해서 먹기도 한다. 그렇게 내가 쉬엄쉬엄 일을 하고 있으면, 와이프는 수시로 시원한 물과 간식을 가져오고, 어머니는 점심과 저녁에 항상 맛있는 밥을 해주시는데 내 입장에서는 항상 기분 좋은 일들이다. 특히, 사무직으로 근무하면서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지도 못하다 보니 점점 몸이 굳어가는 기분인데, 가끔씩 가서 땀 흘리고 일하고 나면 기분 좋게 뻐근하기도 하고 개운하게 잠이 잘 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참 칭찬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일반적인 남자들보다는 조금 체구가 큰 편이어서 힘도 조금 더 센 편이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키도 크고 힘도 센 사위는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시나 보다. 그래서인지 일하는 중에 친척분들이나 지인분들이 오시면 그렇게 내 칭찬을 하신다.

" 우리 큰사위가 일을 잘해. 아주 내 뒤에서 휙휙 소리가 나게 돌아다니고, 힘도 세고 키도 커서 못하는 일이 없어"

 내 앞에서는 크게 칭찬하시는 경우는 없지만, 일하다 보면 들리는 아버지의 칭찬은 나를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든다. 그리고 와이프도 내가 없는 자리에서 아버지가 칭찬하시는 것을 나에게 전하면 좋아하기도 하고, 고마워하기도 한다. 내 입장에서는 주말에 갈 때마다 기분 좋게 일도 할 수 있고 칭찬도 받을 수 있다. 와이프는 항상 내가 하는 일 이상으로 고마워하곤 하고, 나는 그럴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심지어 나는 땀 흘려며 일을 하고 나서 개운하고 샤워를 하고 나와 온 가족이 함께 먹는 밥이 너무 맛있고 즐겁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도 없고, 싫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더 기대되는 것이 있다. 나로 나의 아이가 이 과수원을 누비며 자랄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서울의 중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보니 자연에서 오는 즐거움을 알 수 없었다. 내가 놀던 곳은 항상 시멘트가 깔려 있던 골목이었고, 우리는 항상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차가운 건물과 함께 자랐다. 하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커다란 놀이터가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과수원에 가면 수많은 식물들의 새싹부터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할아버지가 따주시는 맛있는 과일도 실컷 먹을 수 있다. 심지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멍멍이도 세 마리나 있다. 게다가 계절에 따라 여름에는 옥수수도 따서 삶아먹고, 수박이나 참외도 밭에서 직접 수확할 것이고, 가을에는 아빠랑 밤도 따고 감도 따서 맛있게 먹을 것이며, 겨울에는 하얗게 눈 쌓인 과수원의 풍경에 눈사람도 만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연에서 풀냄새, 꽃냄새, 과일냄새 그리고 열심히 땀 흘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땀냄새를 맡으며 자랄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수확의 노고와 기쁨을 아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한알의 과일이 자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지, 그래서 그렇게 수확한 그 한 알의 과일이 얼마나 달콤한지 과일들과 함께 자라면서 그 소중한 과정들을 배우고 이해하길 바란다.

 누군가는 너무 힘든 일들이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과수원에서의 일은 우리 아이를 기르는 일이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힘들 수 있는 육체의 노동은 그로 인해 얻어지는 정신적인 기쁨과 만족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장에 느껴지는 피곤함에만 우리의 감정을 쏟아낸다면 죽기 전까지 우리는 편안함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노고가 나의 많은 기쁨, 보람,행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만 있다면, 조금은 덜 힘들게 기꺼이 그 피곤함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과수원 집 큰사위다. 그리고 내 딸아이는 과수원집 이쁜 손녀딸이다. 원래부터 과수원집 딸인 와이프까지 포함해서 우리의 이 타이틀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주 큰 기쁨이자 커다란 무기가 될 것이고, 우리의 상큼한 피부와 건강을 책임져 줄 것이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아이가 환경의 소중함을 알며 클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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