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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Mar 26. 2020

니들은 애를 거저 키운다.

세상에 거저 크는 아이는 없다

 어제는 와이프가 하루 종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 전날 밤에 자주 깨던 아이 덕에 우리는 번갈아 가면서 깨서 아이를 달래야 했고, 그렇게 잠투정이 심한 날이다 보니 낮에도 낮잠을 잘 자지 않은 것이다. 아이는 잘 잠들지 못했고, 와이프는 피곤한 몸으로 아이와 놀아주고, 모유를 먹이고, 낮잠을 재우려고 하다가 다시 실패하고, 다시 놀아주고, 모유를 먹이 고를 반복한 것 같다. 당연히 본인은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팠지만 쉽게 밥을 먹을 여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오후가 돼서 낮잠을 자는 아이 덕에 밥을 먹고 좀 쉴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내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와이프는 이미 그로기 상태였다.

 퇴근길에 사 온 김밥을 풀어서 대충 저녁을 때웠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내 품에 있었고, 와이프는 오후 늦게 먹은 점심으로 입맛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먹지 않으면, 너무 늦게 먹게 되거나 못 먹는다는 것을 아는 와이프는 생존본능으로 당기지 않는 김밥을 몇 알 집어 먹었다. 우리는 밥을 대충 먹고 아이 목욕을 준비했다. 우리는 아기 욕조에 물을 담아 식탁으로 옮겨서 하는데, 막상 하면 별거 아니지만 준비과정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물을 받고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고 로션과 기저귀도 세팅하고, 아이를 잠시 바운서에 내려놓고 우리 둘은 바쁘게 움직인다. 다행히 물을 좋아하는 아이는 목욕을 싫어하지 않아서 목욕을 시키는 내내 우리는 방긋방긋 웃는 아이의 모습을 맘껏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목욕이 끝이 나면 모든 걸 원상 복귀하고, 바닥과 식탁 위의 넘친 물을 닦아 낸다. 그러는 동안 와이프는 분유를 타고 나는 아이에게 분유를 준다. 분유를 먹이는 동안 잠을 잘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집에 불을 다 끄고 어둡게 한 뒤, 다 먹으면 안아서 트림을 시키는 동시에 잠을 재운다. 예전에는 한 10분 만에 성공하기도 했는데, 요 며칠은 잠이 드는 것은 3분도 안 걸리는 데 침대에 내려만 놓으면 다시 깨서 칭얼대곤 해서, 이리저리 하다 보면 한 30분은 아이를 안았다가 뉘었가다를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그렇게 아이를 재우고 나면 거의 9시~10시.

 그때라도 우리의 컨디션이 좀 괜찮다면 맥주도 한잔하고 영화도 한편 보겠는데, 요즘에는 남은 집안일을 하거나 쓰러져 잠들기 십상이다.

" 니들은 애가 순해서 참 거저 키운다 "

 나의 와이프를 욱하게 하는 말이다. 솔직히 냉정하게 바라보면 우리 아이는 좀 순한 편이긴 한 것 같다. (퉤 퉤 퉤! 아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들 해서 나는 항상 이렇게 미풍양속을 따른다. 퉤 퉤 퉤) 이유도 모르게 막 운다거나 하지도 않고, 좀 세게 울다가도 엄마가 안아주면 금방 그치기도 하고, 배고픈 거 졸린 거 말고는 잘 울지도 않는다. 게다가 원체 잘 웃는 편이어서 어디가 거나 금방 방긋방긋 웃어대고, 다른 사람 품에도 아직은 잘 안기고 놀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 와이프나 나에게

 "거저 키우네 아주 거저 키워"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모든 부모님들은 아시겠지만, 거저 크는 아이는 없다. 순한 아이라고 해서 자기가 침대에 가서 알아서 잠들지도 않고, 혼자 샤워기로 목욕을 하지도 못한다. 결국,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모의 손길이 있지 않는가? 그 부분이 힘든 것은 결국 어떤 아이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물론, 더 예민한 아이이거나 까탈스러운 아이들이 난이도가 높을 것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유난히 더 힘들게 하는 아이들과 비교해서 우리도 똑같이 힘들다 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순한 아이라고 해서 육아라는 것이 눈에 띄게 편하고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거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해병대나 특전사의 훈련이 더 힘든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머지 군생활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남자들 사이에서 가끔 땡보(편한 부대나 보직)라고 놀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현역 만기제대는 동급으로 대우하는 기본 법칙이 존재한다. 그 말은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편해 보이는 보직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아이고 너는 애가 순해서 거저 키운다 "

이 말은 나름 아이가 순하다는 칭찬이고, 엄마에게 좋은 마음으로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정말 힘 빠지는 이야기 일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누구나 치열하게 육아를 감당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고, 그 역할을 다 보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경험이 있다고 해도 쉽게 그들의 노력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 난 니들 삼 남매를 참 쉽게 길렀어. 다들 착하고 순해서 어디 말썽 한번 안 피우고, 자기 일들 알아서 잘하곤 했으니까"

 예전에 우리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이다. 나는 그 당시에 저 말을 듣고, 진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아빠가 된 지 150일 조금 넘었는데도 바로 알았다. 쉽게 크는 자식은 없다. 어머니가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힘든 시기에 삼 남매를 워킹맘으로 기르신 분이다. 어떻게 쉬울 수 있었을까? 저 말 한마디에 나는 더 맘이 시리는 것 같다.

 혹시 주변에 아주 순한 아이를 기르는 편안해 보이는 부모가 있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그 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참 순하고 기르기 편하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쉽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리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부모들 입장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남들의 입으로 듣는 기분은 또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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