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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May 14. 2020

바나나 응가를 아시나요?

더럽게 사랑스러운 육아

 예전에 친구 중에 한 명이 아이를 낳기 두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기는 비위가 너무 약해서, 아무리 아이라고 하지만 아이의 응가와 쉬야를 처리하고 닦아주는 것이 가장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친구의 그 말에 이미 결혼을 했던 다른 친구가 쿨하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육아에서 그게 제일 쉬어!"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그 말은 100% 이해가 간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기저귀를 가는 것은, 어렵고 비위 상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반갑고 기특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제일 예뻐 보이는 순간들은 각자 다를 수도 있겠지만, 모든 부모가 공감하는 순간들은 뭐니 뭐니 해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순간들일 것이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들은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기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기특한 마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비교적 잘 먹고 응가도 잘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2~3일씩 응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소아과에서나 인터넷의 선배님들의 조언으로도 3~4일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해서 크게 걱정은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막상 응가를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기 오늘 응가했어요?"

 응가를 잘하지 못하는 기간에는 수시로 물어보거나 퇴근하고 처음 물어보는 질문이 된다. 그렇게 신경을 쓰다가 아이가 응가를 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안 하다가 몰아서 하게 되니 입고 있는 옷을 다 버리기도 하고, 이불까지 다 빨아야 하게 되기도 하지만 전혀 상관없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불 빨래를 열 번 해도 좋으니 응가를 잘해주는 것이 훨씬 이쁘다.

 얼마 전에도 아이가 3일 동안 응가를 하지 못했다. 심지어 3일째 날에는 뭔가 컨디션도 안 좋아 보이고 투정도 많이 피우다 보니, 혹시 응가를 못해서 배가 아픈 건 아닐까에 대한 걱정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엄마와 아빠가 밥 먹는 사이에 혼자 놀고 있던 아이는 특유의 힘주는 표정을 보여주며 응가를 했고, 우리는 너무나 기뻐하며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줬다. 오랜만에 한 응가여서 양은 장난이 아니었고, 입고 있던 옷까지 다 응가가 묻어서 따로 손빨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의 엉덩이도 닦아주고, 새로운 기저귀도 입혀주고, 응가한 기저귀까지 다 처리한 후에 아이가 엄마와 새 옷을 입는 동안, 내가 아이의 응가 묻은 옷들을 손빨래를 했다. 그런데 아이의 응가에서 검은색 실 같은 것이 엄청 많이 나온 것이다. 아기 응가에서 이상한 검은색 이물질이 나오자 나는 당황을 해서 와이프를 불렀고, 와이프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응가를 몇 번이나 만져보고, 자세히 들여다 보고, 냄새도 맡아봤으며, 와이프는 걱정이 돼서 사진을 찍어놓기도 했다.

"아기가 먹은 이유식중에 저런 거 없지?"

"응. 검은색 먹은 게 전혀 없는데..."

"아기가 우리 몰래 뭘 집어 먹었나?"

"근데 뭘 먹으면 저런 게 나와? 실을 먹었나?"

하지만 그 검은색 실같이 생긴 것들은 0.5mm 정도로 아주 짧은 것들이었고, 이도 나지 않은 아이가 실을 삼켰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균일하고 잘게 잘릴 수가 없었다.

"아. 뭐지? 엄청 많은데?"

 나는 심각해지기 시작했고, 혹시 아이에게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아이와 놀아주는 사이에 나는 인터넷으로 폭풍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 똥에서 실 같은]
 
 네이버에 저렇게 검색을 하니 정말 비슷한 사례가 많이 나왔다. 원인은 바나나였다.


"아이가 바나나 응가를 했네요"


나와 비슷한 걱정을 하며 글을 올린 사람에게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고, 떡 뻥이나 과일도 조금씩 먹기 시작했는데, 아이가 좋아하고 먹는 게 재미있어서 내가 바나나를 먹였었다. 예전에도 와이프가 바나나를 먹이는 것을 봤었기 때문에 큰 걱정하지 않고 먹인 거였는데, 그 검은색 실의 정체가 바로 그 바나나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기들이 섬유질을 소화시키지 못하면 검은색 실 같은 모양으로 변해서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바나나가 섬유질이 많기 때문에 바나나를 먹은 아기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또 한참을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부부가 아이의 응가를 주물럭거리고 들여다보며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우리를 향해 웃어주거나, 천사 같은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을 때만이 아니다. 맛있게 분유를 먹고 크게 용트림을 해주거나, 잘 놀고 있다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며 쉬야를 할 때나, 힘주는 표정을 보여주며 기운차게 응가를 할 때도 부모들은 아이에게 행복을 느낀다.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나는 가끔 아이가 응가를 하는 순간을 생각하면 영화 "광해"가 생각난다. 신하들이 많은 곳에서 왕이 큰일을 보면, 주변의 신하들이 절을 하며 경하드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응가를 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이제 200일이 조금 넘은 초보 아빠에게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순간순간 당황하고 걱정하는 일이 많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와 같은 과정을 겪은 수많은 선배님들이 계시고, 그분들께서 참 열심히 온라인 활동을 해주시는 덕에 우리는 많은 걱정들을 덜어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별거 아닌 이 경험이 내가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이 아이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면 응가 정도는 얼마든지 주무르고 관찰하고 감당할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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