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수영장에 다닌다. 체력이 달려서 뭐 좀 해보려면 영 힘이 안 나서 벌써 연초에 헬스장 1년 치를 끊어놓은 상태인데 말이다. 이중으로 돈이 나가는 상태는 나의 심리를 굉장히 괴롭게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열심히 해서 본전을 뽑아야겠는데 그 저질 체력이 어디 가나...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88년 올림픽을 기념하여 지은 건물이라 시설은 좀 낡았지만 주위에 좀 사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주차장에서부터 그 생활수준이 느껴지는 곳이다. 빽빽이 들어선 주차라인 사이로 각종 고급 외제 승용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내 작고 귀여운 스파크는 행여나 그들과 부딪혔다가는 큰일이다. 비싼 외제차라 보험료도 어마어마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수영장을 이용하는 연령대는 대부분 나보다 윗세대인 어르신들인데 생활이 여유롭다 보니 수영복도 각양각색에 디자인도 과감하다. 아무래도 요즘은 각종 SNS의 발달로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게 미덕인지라 예전 같으면 남사스러울 수 있는 차림도 지금은 과감하고 멋지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뜨악! 이 절로 나오는 차림의 할머니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수영복은 다 같은 수영복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수영복은 엄연히 수영장용 수영복이 있고 워터파크용 수영복, 엘르나 보그 같은 패션잡지 화보 촬영용 수영복이 있다. 이 수영장용 수영복도 좀 더 깊게 나누면 선수용이 있고 일반용이 있다.
수영복엔 놀랍게도 나이가 있다. 10대가 입을 수 있는 게 있고, 20대가 입을 수 있는 복장이 있다. 엄마들이 입는 수영복과 할머니들을 위한 수영복도 있다. 예전엔 몰랐는데 이게 다 나이에 맞게 입는 이유가 있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근육이 없거나 살이 찌거나 둘 중 하나인데 흘러내리는 살들은 잘 잡아주기 위해 그에 맞는 기능으로 나와 있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봐도 할머니인데 소위 말하는 ‘나는 여자예요~’하는 어머님들의 과감한 수영복 패션이다. 17살이 입으면 딱 예쁠 파스텔톤 소녀소녀 한 수영복 (이런 수영복들은 대게 끈으로 되어있어서 삐져나오는 살들과 흘러내리는 엉덩이가 그대로 다 드러난다.)을 입고 나타나면 핫핑크 하이컷 (Y 존을 과감히 드러내어 다리를 길게 보이게 하는 컷)을 입은 동료 어머님이 막 예쁘다고 칭찬을 한다. 그러면 진짜 예쁜 줄 알고 다음에는 더 과감하게 입고 나타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이 돼서 결국은 다른 사람들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고 만다.
한 번은 살집이 있으신 어머님이 날카로운 하이컷 수영복을 입으셨는데 어찌나 치켜 올라가 있던지 그만 Y 존의 살들이 밖으로 삐져나와있었다. 맘 같아선 내 수영복 한 조각 떼어다가 붙여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통은 10대나 20대 철없는 딸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엄마들이 등짝 스매싱과 함께 잔소리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수영장에선 며느리들이 어머님들 몸을 가려드리고 싶은 경우가 종종 있다. ㅎㅎ
우리 아들이 4살 때의 일이다. 시내 유명한 프랜차이즈 미용실에 갔는데 손님이 있어서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한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걸어 들어오시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럭셔리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까맣게 물들인 쇼트커트는 동백기름을 발랐는지 반들반들 윤기가 좔좔 흐르고 나이에 맞지 않는 노란색 슬리브리스 원피스는 무릎에서 하늘하늘거렸다. 빨간 페디큐어를 한 발은 황금색 스트랩 하이힐에 올려져 있었고 손가락 매니큐어는 터키 블루라고 하는, 눈에 확 튀는 색을 하고 있었다. 옷차림과의 경쟁에서 질 수 없다는 양 메이크업도 아이섀도부터 립스틱까지 어느 한구석 여백의 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맥시멀 리스트로 꾸민 아주머니를 보고 내 딴에는 속으로 ‘와~ 진짜 투 머치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디서 들려오는 아찔한 목소리
“와~ 기신이다! (귀신이다)”
우와!!! 난 행여나 그 아주머니가 들었을까 봐 재빨리 짱구 엄마처럼 아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앗! 왜 때려!”
그렇다! 아이는 죄가 없다. 그냥 보인 대로 말했을 뿐이다.
요즘 수영장을 다니면서 가끔은 4살짜리 아들을 소환하고픈 맘이 든다. 그러면 눈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들이 이렇게 말하겠지..
“우하하~ 엄마! 저 할머니 00 보여”
일전에 한 패션 전문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패션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답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