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입조심하세요 여러분
그건 내 진심이 아니야!
이마에 그렇게 붙이고 다녀야 하나. 어김없이 입이 방정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정에 딱 어울리는 단점이다. 이름하여 입방정으로 친구의 표정 썩게 하기! 아, 특기도 있다.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할 땐 고삐라도 풀린 것처럼 입을 털어대다가 막상 집 가는 길에 후회하기. 그렇게 쌓인 후회와 반성의 나날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도 단점이 잘 고쳐지지 않는다. 아무렴! 2n년간 키워온 입 털기 실력이 하루아침에 죽을 리가.
“아 집게사장 케이크? 그 집 진짜 구려. 가격이 싸서 그런가.”
케이크를 준비한 친구들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서로의 눈치를 힐끔힐끔, 그들은 민경이처럼 대번에 쓴소리를 하진 않았다. 배려심 많고 적절히 친한 그들과 나의 사이가 나를 실수라는 수렁의 구렁텅이로 레드카펫을 깔아주었다. 친구들아 당장이라도 그 입을 꿰맸어야지. 틀어막고서 “너의 생일을 위해 준비한, 네 눈앞에 케이크가 바로 그 집 케이크다 이 새끼야.”라고 말했어야지. 친구들이 생일 케이크라며 나에게 대령한 그 케이크가 집게사장 케이크인 줄 알았다면 절대 그런 발언은 하지 않았다. 절대, 결단코, 맹세코! 난 몰랐다고.
이 황당한 실수로 가는 길은 빠르다. 악마가 집요하게 그 길로만 속삭이고, 나는 그 속삭임에 속절없이 회유되는 것처럼 거침없다. 친구들이 짜잔! 하며 보여준 케이크를 봤다. 고마워! 그러고 나서 집게사장 케이크 같지 않은 외관에 슬쩍. 최근에 다른 친구의 생일을 맞아 준비했던 집게사장 케이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경험이 삐죽. 뇌를 거치지 않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방정맞은 입이 우르르. 입방정은 그렇게 쏟아졌다.
요망한 입은 공사가 다망하다, 쓸데없이.
회사에서 팀원들과 다 같이 밥을 먹을 때였다. 연애 이야기가 화두로 올랐다. 누군 연애를 하니, 안 하니. 얼마나 만났니, 마니. 이런저런 경험담이 쏟아지다가 마이크가 나에게로 넘어온 순간이었다. 상사 분들은 팀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던 나의 이야기가 궁금했을 것이다. 요즘 MZ세대는 어떻게 연애를 하나. 요즘도 비슷하나. 뭐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으셨을 지도. 그들은 입을 꾹 다물고 사회생활용 미소를 띠운 채 고개만 끄덕거리던 나에게 물었다. 제디는 연애해요? 당시 연애를 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저 고개만 저었다. 전 연애 안 하는뎁쇼. 더 이상 안 물어보심 안 될까요. 나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입을 최대한 다물고 있으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상사가 후속 질문을 펼쳤다. 그럼, 뭐, 소개팅 같은 것도 해요? 그 질문에 오늘도 역시 공사가 다망하신 입이 한 건 했다.
“소개팅은 별론데요. 소개팅 나가면 스스로가 사랑에 환장한 사람 같이 느껴져서···.”
어떻게 보면 단어 선택이 조금 탐탁지 않을 뿐, 그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 거구만 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질문을 건넨 상사의 배경에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유명한 소개팅 수집가였다. 그러니까, 왜 그 유명한 소문이 내 귀에까지는 닿지 않았냐는 거다. 그 뒷배경을 몰랐던 나는 대형 사고를 쳤다. 오손도손 대화가 이어지던 팀 점심 식사자리에 냅다 찬물을 끼얹은 거지. 다른 이들은 눈알을 굴릴 뿐이었고, 그때까지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나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내게 질문을 건넨 수집가 상사가 잠깐의 정적 후 입을 뗐다. 아, 저는 소개팅 자주 나가요.
말이 많다는 것, 이야기를 주워 담고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종종 오류가 발생한다는 게 흠이었다.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앞서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과, 주변을 배려하지 않은 결과다. 물론 대화를 나누는 상대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나서 대화를 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맞춰 주는 것도 불가능.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어휘의 선택과 얕은 생각에 있다. 보라. 입방정이 나의 상식을 깨고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의 발언들. 절대 깊이 생각해서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은 아니지 않나.
듣는 사람을 한 번 고려했다면 뱉을 수 없었을 테다. 집게사장 케이크를 애용하는 사람들도, 소개팅을 자주 하는 사람들도 사실 언제나 곁에 자리할 수 있다. 아울러 그들이 있는 곳에서 못할 얘기면 없는 곳에서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맞고.
후회의 정체는 간결하다. 오늘은 조금 더 신중할 수 없었나, 하는 것. 깨달음도 명확하다. 이야기의 도미노를 하나씩 세우며 살아가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 그렇기에 결심은 더욱 짧다. 입 털기 전에 상대의 눈 한번 마주치자! 그들의 깊은 눈을 보며 조금이라도 깊은 마음을 꺼내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