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워 담다 보니 남는 것이 많았다는 이야기
나는 어릴 때부터 말하는 걸 좋아했다. 얼마나 지독했냐면, 남들이 이야기할 땐 내가 할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가 말할 때면 지루해했고 그건 당연한 거였다. 남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하루 종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물을 것이다.
"네,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종교 믿으세요?"
몇 번 신천지에 포교될 뻔한 순간을 넘기고서야 입을 닫았다. 어릴 때는 내가 입만 열면 모두가 경청했다. 나는 내가 대단한 달변가인 줄 알았다. 이제는 알고 있다. 그건 유치원생의 사생 대회 출품작을 보는 것과 같은 반응이었다.
억울하니 한 사람만 더 탓하겠다. 초등학교 선생님, 당신 참 나빴다. 당신은 그저 의무적으로 빨간색의 코멘터리를 적었을 것이다. ‘우리 친구 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하네요?’ 당신도 몰랐겠지. 당신의 코멘터리가 훗날 ‘나는 반에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연예인 버금가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마는 이팔청춘에게 자라날 자만심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는. 그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주절주절 말하다가 소외당할 뻔하고 입을 다물었다.
"제디, 우리 이야기도 들어주면 안 돼?"
어어, 미안. 나는 내 이야기가 재미있는 줄 알고…. 그 친구가 내게 몰래 와서 해준 솔직한 한 마디가 완전히 소외당할 뻔한 사태를 막았다. 고맙다, 민경아(민경이와는 무사히 지금까지 11년째 친구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튼 그러고 방정맞은 입이 조금 다무나 했는데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 머리가 크고 나서부터는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남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저 아이의 자기주장대회가 끝나면 득달같이 나의 자기주장대회를 시작할 테다, 하는 심정이랄까. 그래서 그 결말이 뭐였냐고? 말했잖은가, 포교당할 뻔했다고.
그렇게 두어 번의 인생의 위기 직전까지 몰리고 나서야 나는 입을 반쯤 꿰맸다. 대신 손을 놀렸다. 아무도 안 들어준다면, 일기장에 적어야지 별 수 있겠나.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비공개 포스트가 가득한 블로그였지만 이 공간에 만족할 수 없었다. 아무리 별 수 없다지만, 남에게 받는 피드백이 고팠던 것이다. 이야기가 별로라든가, 재밌다든가. 어느 쪽이라도 좋았다. 나는 기질이 그랬다. 사람들의 반응을 먹고사는 관종끼를 타고났다.
고등학생 때는 글짓기 대회에 주구장창 참가했다. 부문은 항상 산문이었다. 머릿속에 부유하고 있는 넘치는 생각들을 전부 담기에 운문은 턱 없이 짧았다. 그렇게 산문과 일기를 반복적으로 써대다가 눈 떠보니 국어국문학과에 와있었다. 응? 대회에서 어쩌다 상장 몇 개 탔는데 운이 좋았나.
스무 살에는 할 말이 더 많았다. 온통 새로운 것 천지이다 보니 쓰고 싶은 글이 넘쳐났다. 그 길로 교내 학보사에 지원해서 2년간 또 글을 썼다. 그런데 막상 학보사에 들어와 보니, 신문은 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포기할 수 없지! 곧장 잡지사를 알아보았고 그곳에서 에디터가 되었다. 여기서도 ‘긴 글 전문 에디터’라는 타이틀을 얻어내 수 있었다.
휘몰아치듯 인생이 글을 타고 움직였다
친구들에게 떠들고 싶은 이야기를 글자로 담아냈고 담아낸 글자들을 품지 않고 공개했다. 공개한 글자들이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힘을 보탰다. 학보사 기자셨다구요? 잡지 에디터셨어요? 그렇게 물은 사람들은 꼭 나에게 새로운 일감을 물어다 주었다.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글을 썼는데. 이게 웬 떡이람.
사소한 위기에 영원히 입을 다물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타고난 기질을 죽이고 살았다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고 싶은 건 하는 것이 맞다.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것을 어떻게든 해낼 동력이 되어준다. 그렇게 어떻게든 해내고 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도움을 주더라.
여러모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격과 관종 기질에 감사하다.
아, 나의 긴 이야기를 들어준 신천지 친구와 민경이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