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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row and pleasure Nov 06. 2021

아기 사냥꾼이 망을 봅니다.

사냥감의 정체

아기 사냥꾼이 망을 봅니다. by 내일을 꿈꾸는 꿈쟁이


‘3초 후, 머리끄덩이 잡힌 채 머리카락을 한 움큼이나 뽑힐 줄도 모르고

잠을 자던  불쌍한 사냥감







아가, 이땐 8월의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고, 네가 한 8개월쯤 되었을 때였어.

이 당시 민첩한 머리끄덩이 사냥꾼이었던 넌,

아빠가 잘 때마다 머리카락을 한 줌씩 잡아가며 일으켜 세우곤 했었어.     


넌 요 때 겨우 뭘 붙잡고 서는 정도였고,

소파는 너무 높아서 올라갈 생각도 못 할 때였지.     


그래서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온 네 아빠는,

이날도 자기만의 안전기지, 소파 위로 갔어.

그러더니 신이 나서 너를 요리조리 놀리다 잠이 들더라.     


어미는 네가 2주일 전부터 매일 매일 그 소파에 다리 한 짝을 올려놓고,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끊임없이 수련하는 걸 보았더랬지.     

이날도 엄마는 너의 그 귀여운 수련과정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었는데,

네가 저 날 유독 어미를 야심 차게 바라보더라.


그러더니, 갑자기 네 오동통한 다리를 소파에 한 짝 척하니 걸치고

작은 두 손으로 소파를 꽉 잡더니,

순식간에 아빠의 마지막 참호! 소파를 정복하고야 말았어.     


네 아빠는 단잠을 자다가

이 사진을 찍고 정확히 3초 후, 소파 위에서

강아지처럼 날뛰던 너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히고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뽑혔다.        

  

그때 우리는 알았다.


넌,

이 담에 커서 뭐가 되도 될 녀석이란 걸 말이야.   

  

그런데, 네가 열다섯 살인 지금, 새삼 이 사진을 보니까,

어미도 이때 너에게 머리를 그냥 내줬어야 했나 싶어.   

  

이때, 한창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즐겨보던 어미는

네가 어미 머리를 사냥하러 올 때마다,

버릇을 고치겠다며, 순두부처럼 작고 여린 네 두 손을 꽉 잡았어.     


어차피 다 빠질 머리였는데, 그냥 다 내줄 걸 그랬어.


어미가 정말 미안한데, 이미 다 지난 과거니 이를 어찌하면 좋니.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어미가 널 너무 사랑한다는 거야.


그건 변치 않는 거야. 앞으로도 말이야.

사랑해, 나의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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