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참회록』에서 찾은 답”

“왜 살아야 하는가 "

'래프 톨스토이'는 위대한 소설가이면서 사회혁명가, 시인이다. 그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끊임 없이 노력을 한다. 그는 젊을 때 전쟁에 나가서 싸우기도 하고 방탕한 삶을 살아보기도한다. 그리고 농노와 지주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중재자가 되었으며 학교을 세워 농민의 자녀들을 배움의 길로 안내를 한다. 그는 아주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수 많은 책들과 신앙관련 책들... 철학책... 수학과 과학책.... 우리들에게 질문을 한다. 답은 없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현재와 과거의 민중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진정한 노동에서 평화을 얻는다.

톨스토이는 모든 걸 버리고 노동의 삶과 극빈한 삶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은 실천적 사회혁명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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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

정교회를 다니고 세례를 받고 자랐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진지하게 믿은 적이 없다. 나의 믿음 막연하고 불안정한 상태였다. 사실 신앙이라 생각해 왔던 것들이 공허한 것이고 무의미한다. 하느님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떤 하느님을 믿고 있었는지는 내 자신도 잘 알 수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진정으로 믿고 있던 것은 내 자신이 완전하게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지적으로 내 자신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연구하고 규칙들을 스스로 설정 해놓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더 힘있는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 다른사람보다 더 유명하고 더 중요하며 더 부유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바뀌었다.


나의 청년시절 :

나는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다. 이 시절을 생각하면 역겨웠으며 마음이 아팠다. 나는 전쟁에 나가서 사람들을 죽였고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에게는 결투를 신청했으며 노름으로 많은 돈을 잃었고 농민들의 피땀을 갈취하며 살았다. 술취함, 폭력, 살인, 온갖음행, 강도, 거짓말...ㅠ.ㅠ 방탄한 생활을 했다.

나는 교만, 이기심, 허영심으로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명성과 돈을 얻기 위해서 였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도 알지도 못하면서..

인생에 관한 동료 작가들의 견해는 이러했다. 삶은 발전한다.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 즉 사유하는 사람들이 이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들 사유하는 사람들 중에서 예술가와 시인인 우리는 중대한 영향력을 갖는다. 우리들의 소명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예술인들은 사람들을 가르치고자 했다."

우리는 돈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건 책을 쓰고 신문에 글을 싣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류에 가장 큰 유익을 끼치는 최고의사람들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더 많이 돈을 벌고 칭찬을 받는 것이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책을 쓰고 신문을 내는 일 밖에 없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를 올바른 사람으로 여겼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모든 활동으로부터 나를 떼어 놓았다. 하지만 5년 전에 뭔가 몹시 이상한 일이 내게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어느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무기력감과 함께 삶이 정지해 버린 거 같은 느낌이 나를 덮친 것이다. 우울해졌다. 나 자신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나는 삶을 두려워하고 살면서 벗어나려고 쓰면서도 여전히 삶 속에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머지않아 나에게도 질병과 죽음을 찾아올 것이고 그러면 악취와 구더기 밖에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조만간 나 역시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집착을 하는 것일까? 어떻게 사람들이 이 사실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정말 놀랍지 않는가....

결혼 후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나는 마치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되었고, 나의 삶은 정지된 느껴졌다.

"인생은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정지되어 버린 나의 삶 :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내 자신도 알지 못했고 나는 사는 것이 두려웠고 삶에서도 도피하고 싶었다. 생애 취해 있는 동안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취에서 깨는 순간 그것이 죄다 기만이고 어리석은 미망(迷妄)에 지나지 않는다. 미망(迷妄)도 그 중 하나다. 뜻을 사전에 찾아본다. '사리에 어두워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맴'이라 쓰여 ...

● 동양의 우화 :
맹수에게 쫓겨서 근처에 있는 우물로 들어갔는데 밑에는 한마리 용이 입을 벌리고 있다. 중간 틈 관목에 매달려서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자꾸 손에서 힘이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검고 흰 두 마리 쥐가 관목을 갉아먹는게 아닌가...ㅠ ㅜ 이런 상황에도 관목에 묻어 있은 꿀을 보고 그걸 핥았다. 지금까지 나에게 위로를 준 꿀을 핥고 있었다. 그 꿀은 이제 나를 기쁘게 해주지 않는다... 꿀은 가족과 예술

이제는 끊임없이 나를 죽음으로 이끄는 낮과 밤을 목격하지 않을 수 없다. 너는 어차피 인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예술은 인생의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이 무의미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죽음의 용과 내 생명의 밧줄인 관목 줄기를 갉아먹는 쥐를 보는 순간 그 어떤 꿀의 달콤함도.. 나에게는 이제 감미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가만히 참을성 있게 종말을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기분이 무엇보다도 나를 자살에 대한 생각으로 이끌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내가 무엇을 못 보고 만 것은 아닐까? 나는 오랫동안 괴롭고 쓰라린 탐구를 계속했다. 나는 모든 지식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나는 모든 분야에서 찾았다. 나의 의문? 왜 나는 사는가? 왜 나는 무언가를 구하는가? 또 무슨 일인가는 하는가? 인생문제에 답은 없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제기된 질문 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에 답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지극히 짧은 시간이 지극히 작은 한두 번밖에 경험하지 못하여 나머지는 알 길이 없는 건 인류의 삶을 도대체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생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만큼 진리에 가까워진다고 말했다.
​또 헛되고 헛되며 하고 솔로몬이 말하고 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이미 있던 것이 뒤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뒤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거이 없나니 무엇을 가르쳐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으니라.....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니라.....
어느날 석가모니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행복한 왕자 석가모니는 질병이나 노쇠나 죽음을 본 적이 없다. 이가 빠지고 실수없이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끔찍한 노인을 보았다. 이번에는 흐린 눈에 창백한 안색으로 비틀비틀 걸어오는 병자한 사람과 만났다. 그때까지 병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던 왕자는 가마를 세우고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렇게 되었느냐.... 물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몸에 덮치는 병이라는 것과 건강하고 행복한 왕자 자신도 언제 그런 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놀며 돌아다닐 기분을 잃었다. 저것은 무엇이냐 송장이옵니다 송장이 무엇이냐? 그는 송장이 된다는 것은 방금 본 그 사람의 모습처럼 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송장이 흙 속에 묻힌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람은 이제 영원히 되살아날 수가 없고 그저 앞니만 나고 구더기만 끊기 때문이옵니다. 이게 모든 사람의 운명이란 말이냐?

톨스토이는 ​온갖 지식 가운데에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으므로 나는 내 주위 사람들한테서 발견할 생각으로 실생활 속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내 주위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를 절망으로 이끈이 문제를 그들은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관찰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빠져 나갈 네 가지 출구가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① 첫 출구는 무지무식의 길이다. 이 길은 인생의 악이며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나아가는 방법이다.

② 두 번째 출규는 향락주의 즉 쾌락주의 것이다. 이익을 인생의 희망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잠시나마 지상에서의 현재의 행복을 향유하고 용도지도 외면한 채 최상의 방법으로 특히 꿀이 많이 개었을 때 실컷 핥 자는 방법이다.

③ 세 번째 출구는 힘과 기력으로 이에 맞서는 방법이다. 즉 삶은 악이며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단숨에 생을 전멸해 버리는 방법이다 억세고 확고한 성격의 소수 사람들이 이런 방법을 쓴다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어릿광대 노름의 의미하며 깨닫고 죽은 자의 행복이 산자의 행복보다 낫다는 거 그 이상의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그들은 즉각 목을 매거나 물에 투신하거나 가슴에 칼을 꽂거나 선로 위에 몸을 내던지는 수단을 택하여 단숨에 그런 광대놀음에 맞춤법을 찍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이 방법을 가장 가치 있는 방법으로 보고 이것을 결행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④ 네 번째 출구는 나약함이라는 즉 심약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인생이 악이고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우물쭈물 흘러가는 방법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죽음이 생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이성에 따른 행동으로 단숨에 허위를 다 파악하고 자기의 목숨을 끊을 만한 용기가 없어 마치 그 무엇을 기다리고 있기나 하든 우물쭈물 물에 물 탄듯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면서 사는 삶이다. 삶을 가능한 빨리 끝낼 힘도 없는 나약한 사람들...

네 가지 방법을 통하여 무서운 자가당착으로 부터 자기를 구하고 있었다. 무지 無知는 언제나 이런 투로 말한다.
무엇인건 자기가 모를 때에는 모르는 그것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언제나 말한다. 우리가 자살하는 방법으로 생을 거부하는 것을 아무도 방해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자살하라. 그러면그런 생각에 골머리를 썩을 일도 없을 것이다. 생이 싫으면 자살하면된다. 살아서 생의 의의를 깨닫을 수 없다. 너는 희희락락하는 무리 속에 끼어들었다.

모두 참으로 유쾌해 하고 있다. 너만 따분하고 불쾌한 기분에 젖어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여기를 떠나라...

실제로 자살 이외에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단행할 결심이 서지 않는 우리들은 가장 약하고 지리멸렬한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바보들이 새 장남감을 들고 왁자지껄하게 떠들 듯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휘드르며 공연히 떠들어대는 바보이외의 과연 어떤 인간들이겠는가?
분명히 깨닫고도 심약해서 절망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 뿐이다.

​톨스토이는 이제 다른시각으로 바라본다. 이 세상에 오늘날까지 살아왔고 또 현재도 살고 있는 수천 수백억이나 되는 이 모든 사람들은 자기 생활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고 또 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전 인류는 스스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듯 살아왔고 생명이 존재하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인생의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며 교육받고 삶의 방식을 터특하면서 그들에게서 양분과 수분을 공급 받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의 말과 사고의 존재를 나는 부정하고 있다..뭔가 잘못 되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과 우리의 삶을 어깨에 짊어진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에게 찾아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그들의 교리에서 인생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려는 내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이 살아지는 한 살아가는 것이며 부여 잡을 수 있는한 모든 것을 부여 잡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또 비신앙인과 나와 다른 사람 못지 않게 욕망을 채우면 추악하게 살고 있다. 나도 솔로몬도 이 삶의 파도에 휩쓸려 왔다. 나는 노동자계층에서 믿는 미신이나 신앙은 삶과 밀저하게 연관대어 있어서 그들을 깊게 살펴보기로 했다. 자신과 같은 부유한 사람들은 삶의 불만이 많치만 노동자계층의 생활은 힘겨운 노동으로 가득하지만 부유한 사람들 보다 불만이 덜하다. 이 사람은 삶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들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심지어 기쁨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속한 계층의 삶이 역겹게 느껴졌으며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노동하는 민중들 삶을 직접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의 행위야말로 유일하고 진정한 과업으로 여겨졌다.

기생충같이 30년을 살았다. 이 세상의 삶은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내 삶의 우월성에 벗어나 노동을 업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민중의 진정한 삶을 경험하고 그것만이 진정한 삶임을 깨닫게 되었다.

삶이란 식어버린 마음으로 바라보니 덧없고 어리석은 장난이구나.... 인간의 최선은 무엇인가?
그는 미셀의 수상록에 죽을때까지 손에서 놓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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