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읽기] 다카야마 - (1)

역사의 길목에서 만난 도시

by 버터멜론

*개인적인(가족) 여행에 대한 기록도 글로 남겨보고자, 도시 읽기(일기) 형태로 글을 작성해 보고자 합니다. 언제까지 쓸 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저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기를 바라며 ㅎㅎ


이번 나고야 근교 여행 중, 시라카와고에서 히라유로 넘어가는 길, 중간 기착지로 들르게 된 도시 다카야마. 그리고 히다 지역 전반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그냥 지나칠뻔 했던 곳


솔직히 고백하자면, 다카야마는 이번 나고야 여행 전까지는 들어본 적도 없는 도시였습니다. 아마도 나고야나 기후 같은 상대적으로 큰 도시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니다. 처음에는 그저 시라카와고나 히라유로 향하는 길목에서 잠시 끼니나 때우는 '경유지' 정도로만 여겼었죠.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저의 큰 오산이었고, 다음에는 이 도시만을 목적으로 다시 찾아와도 충분할 것 같을 정도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다카야마 풍경


전문 여행가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일본 여행을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사람들의 현재 삶이나 트렌드를 살펴보는 것도 즐겁지만, 방문한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고 가는 만큼 여행의 깊이와 재미가 배가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야마오카 소하치의 장편 소설 '대망'을 흥미롭게 읽어서 인지, 일본의 전국시대 역사와 관련된 지역과 도시에 특히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과거 역사적 흐름과 실제 지역을 연결해 보며 그 궤적을 쫓는 것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고야는 전국시대 3대 영웅(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야기의 중심 무대로서 도시 곳곳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인 히다 지역은, 뜨거운 역사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깊은 산속, 주변의 강력한 다이묘들 사이에서 '천혜의 요충지'이자 '완충 지대' 역할을 이어간 곳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당시 고유한 모습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어쨌든, 이번 나고야 근교 여행은 렌터카와 함께 자연스럽게 나고야의 북쪽, 다카야마를 포함하는 히다 지역을 향해 달리는 여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히다 지역과 전국시대


이야기에 앞서, 다카야마의 정식 명칭은 ‘기후현 다카야마시(岐阜県高山市)’입니다. 사실 ‘히다(飛騨)’라는 명칭은 19세기 이전 율령국 체제에서 이 일대를 부르던 옛 국명입니다. 과거의 히다국과 남쪽의 미노(美濃)국이 통합되면서 지금의 기후현이 된 것이죠.



재밌는 점은 두 지역의 색깔이 아주 다르다는 것입니다. 남쪽의 미노가 넓은 평야와 온화한 기후를 가진 반면, 북쪽의 히다는 험준한 산악 지형에 눈이 많이 내리는 고립된 환경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차이 때문에 두 지역은 현(県)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이곳을 단순히 기후현이라 부르기보다 ‘히다 지역’이라는 옛 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부르곤 합니다.


어쨌든 히다 지역은 전국시대의 주요 전투가 집중된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역사적으로 아주 무의미한 공간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히다는 지형적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 고원 지대로, 해발 400~700m에 위치한 고산 분지라는 특성 때문에, 외부 세력이 쉽게 진입하기 어려웠습니다. 16세기 중반에는 미노(기후)를 장악한 사이토 도산의 세력 아래에 있다가, 이후 오다 노부나가가 미노를 평정하면서 히다 역시 그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훗날 히데요시 정권하에서 장수 가나모리 나가치카(金森長近)가 히다를 정벌하고 다카야마를 중심으로 영지를 다스렸습니다.



가나모리 가문은 약 100년간 히다를 지배했는데, 이 시기에 상인 거리가 정비되고 도시의 기본 틀이 형성되었습니다. 가나모리 나가치카 역시 당시의 히데요시와 마찬가지로, 세련된 교토 문화에 심취하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토의 상류 문화를 다카야마에 가져오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덕분에 다카야마가 지금의 리틀 교토로 불리게 되었던것이죠).


그러나 1692년, 에도 막부는 히다의 풍부한 목재 자원에 주목하여 이 지역을 막부 직할지(天領, 덴료)로 편입시켰고 영주였던 가나모리 가문은 가미노야마 번(현재의 야마가타현)으로 강제 이주하게 되죠. 대형 건축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에도의 도시 건설에 목재가 필수적인 자원이었기도 하고, 또 다른 역사에 따르면 당시 유력한 가문의 힘을 뺏기 위한 막부의 정책적 술수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직할지 편입 이후 약 180년 동안 다카야마는 막부가 파견한 대관(代官)이 행정을 맡는 특수한 도시로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지금의 다카야마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직할지로 편입되었기에, 번주가 바뀌었음에도 도시가 파괴되지 않았고(애꿎은 다카야마 성만 파괴..), 막부의 직접 관리 아래 행정적 안정성이 유지됐기 때문에 에도 시대의 도시 구조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죠.



물의 도시, 구조하치만


나고야에서 차를 타고 다카야마를 향해 1시간 반 정도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구조하치만(郡上八幡)이라는 매력적인 도시를 지나게 됩니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 들어서자마자 차량 정면 산꼭대기에 당당히 서 있는 작은 성이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구조하치만성입니다.



차를 타고 성 입구까지 올라갈 수 있고, 입장 티켓을 구매한 뒤 천수각까지 올라서면, 마치 거대한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한 형상의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일본의 많은 성이 콘크리트로 재건축되어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것과 달리, 이곳은 1933년에 목조로 재건된 일본 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재건 천수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여느 관광지의 성과는 사뭇 다르게, 나무 계단을 밟을 때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나름 고풍스럽고 한적한 매력이 살아있습니다.


물고기 모양의 마을. 보이시나요?


성에서 내려와 마을로 들어서면 '물의 도시'라는 별칭이 단번에 이해됩니다. 수로마다 잉어가 노닐고, 마을 곳곳에서 들려오는 청량한 물소리는 여행자에게 깊은 평온함을 선사합니다.



차를 타고 구조하치만을 마주하며 문득 떠올랐던게.. 크건 작건 우리가 무심코 지나다니는 '길'은 그 자체로 역사를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자동차로 달려온 이 길 역시도, 수백 년 전 무사들이 말을 타고 달렸던 길이었을 거란 사실이죠. 그런 맥락에서 보면 구조하치만은 다카야마로 향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히다 지역의 풍부한 자원(목재와 광산)이 나고야를 통해 에도까지 향하는데 있어 구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통로였던것이죠.


히다 지역의 나무는 이 물길을 따라 에도까지 가지 않았을까


참고로, 다카야마의 기틀을 닦은 가나모리 나가치카는 이곳 구조 인근을 다스리며 익힌 건축 기술과 도시 정비 노하우를 이후 다카야마를 건설할 때 아낌없이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정교한 수로 시스템, 격자형 도시 구획, 산과 강을 활용하고 사찰을 배치하는 방식이 다카야마와 매우 유사한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도시 모두 문화도시로서의 교토의 모습을 오마쥬 했다고..)



굳이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다카야마라는 대작을 출시하기 전 '베타 테스트'를 구죠하치만에서 완벽하게 마친 셈이랄까. 그래서인지 두 도시를 연달아 여행해 보면, 도시 설계 장인의 철학이 곳곳에서 닮아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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