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교토, 에도의 향기를 걷다
제가 방문 4월 초는 벚꽃이 가장 크게 개화한 시기였습니다. 나고야 시내는 벚꽃잎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보다 북쪽에 있는 다카야마는 가장 아름답게 꽃이 펴진 시기였습니다. 벚꽃 구경의 인파가 상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시에 들어오자마자 느낀 건 전통적인 분위기에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다카야마는 구시가지, 특히 이치노마치·니노마치·산노마치 거리에는 좁은 골목을 중심으로 목조 건물과 상점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처마를 잇대고 늘어선 에도~메이지 시대 건물들이 통일된 경관을 이루는 모습은 분명 교토와 닮아 있으면서도 그 여유로움과 결 측면에서 살짝 다름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교토가 귀족과 사찰 중심의 도시라면, 다카야마는 상인과 장인 중심의 도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미묘한 차이가 거리 구석구석에 조금씩 배어 있는 듯 했습니다.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리틀 교토"라는 표현이 붙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 곳곳에 이러한 별칭이 붙은 도시들이 있지만, 다카야마의 경우 단순히 외관의 유사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에도 시대 상업 지구의 구조(격자형 골목, 간판을 내건 목조 상가, 짧은 처마 아래의 통로)가 이례적으로 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산노마치 거리 일대는 국가 중요전통적건조물군보존지구(重要伝統的建造物群保存地区)로 지정되어 지역의 보호를 받고 있고, 각 거리 입구마다 거리의 설명과 함께 작은 팻말이 놓여 있기도 합니다.
* Fun Fact
다카야마 목조 건물이 검정색인 것은, 감즙(카키시부)과 그을음을 배합해 바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나뭇결을 그대로 살리고 싶어 했던 히다 장인들의 고집스러운 미학적 선택이 있었다고 합니다. 관서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정 목조 건물은 불에 태워 병충해를 방지하고 보존력을 높이기 위한 '야키스기' 기법이라고 합니다.
도시 전반적인 인상 중 하나는 관광객 구성입니다. 거리나 식당을 다녀 보면, 생각보다 서양 관광객의 비중이 높고, 동양 관광객은 상대적으로 적게 마주칩니다. 아마도 이는 두 문화간 여행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적으로 서양 관관객들이 2~3주 씩 장기 여행을 즐기다 보니, 전통과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다카야마라는 도시를 주요 일정에 포함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특히 JR 패스(기간 내 열차 탑승 무료)를 구매하여 이동하는 것을 선호하니, 추가 비용 부담 없이 시간 들여 방문할 도시로 선택하지 않았나 합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한국 관광객은 3~4박의 짧은 일정으로 여행을 계획하니 당일 투어 정도로 다카야마 스케쥴을 추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일테고요.
산마치 거리에서 조금 벗어나면 다카야마 진야(高山陣屋)가 있습니다. 에도 막부가 다카야마를 직할지로 편입한 이후 설치한 행정 관청으로, 세금 징수, 물자 관리, 사법 업무까지 담당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이 일본 전국에 남아있는 현존 유일한 막부 대관청 건물이라고 합니다(에도시대 60개 이상의 진야(관청) 중 다카야마가 유일하게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다고 함).
메이지 유신 이후 대부분의 막부 관련 건물이 구시대적이라는 이유로 철거되거나 소실됐는데, 다카야마 진야는 메이지 정부가 이 건물을 그대로 관공서로 활용하면서 살아남았던 것이죠. 그 덕분에 지금도 에도 시대의 취조실, 창고, 정원 등이 당시 모습에 가깝게 남아 있습니다. 추가로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다카야마성이 사라진 것도 이 진야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성이라는 것이 본래 '영주의 권위' 혹은 '외부로의 방어'를 위한 것인데, 막부 직할지로 편입된 다카야마는 더이상 성의 기능을 할 수 없었고, 아주 계획적으로 완전하게 파괴 되었다고 합니다.
다카야마에는 소규모 양조장이 밀집해 있습니다. 좋은 술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세 가지, 산악지대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 저온 발효를 위한 <낮은 기온>, 그리고 <양질의 쌀>이 더해져 사케는 이 지역의 특산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산악 지형 특성상 이곳에서 '양질의 쌀'을 대량으로 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또 궁금해서 인터넷에 찾아 보니, 다카야마는 풍부한 목재와 광물을 인근 도시와 거래하고, 그 대가로 나고야나 도야마 등 인근 곡창지대의 쌀을 들여와 유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확보한 쌀 중 식량을 넘어선 여유분이 자연스럽게 술 빚기로 이어졌고, 그것이 오늘날 다카야마 사케의 기틀이 된 셈이라고 합니다.
양조장 입구에 매달려 있는 둥근 공 형태의 장식은 스기다마(杉玉)라고 합니다. 삼나무(杉) 잎을 둥글게 엮어 만든 것으로, 새로운 술이 완성됐음을 알리는 전통적인 표시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초록색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갈색으로 바뀌는데, 이 색의 변화로 술의 숙성도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에도 시대부터 이어진 관습인데, 지금도 전국 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살아 있는 전통이 되었다고 하네요.
다카야마 구시가지의 일부 양조장들은 독특한 시음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입구에서 코인을 구매해 전용 잔에 원하는 사케를 받아 마시는 방식이죠. 양조장마다 수십 년에서 백 년 넘게 이어온 고유의 술들을 선보이는데, 솔직히 사케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그 미묘한 주질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구분해내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맛과 품질을 떠나, 바로 옆에서 술이 빚어지는 양조장에서 마시는 한잔은, 한국의 이자카야, 집에서 병술로 마시는 닷사이나 쿠보타와는 기분이 확실히 다른 느낌이였습니다. 다음에 좀 더 여유가 된다면.. (차를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좀 더 각을 잡고 마셔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