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동해 여행 01| MBTI 바다 버전? -"I"성향과 동해
집순이. 혹은 카페순이(?). 나를 형용하는 말들 중 가장 익숙한 말 중 하나. 평소 원체 행동반경이 좁다. 외출이라고 한다면 서울 좀 더 북쪽의 서점 나들이를 가던가. 아니면 좀 더 남쪽에 있는 카페 정도 갔던가. 집-회사를 빼면 그게 나의 연초 몇 달간 이동 전적일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늘 마음속에는 떠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로망 아닌 로망은.. 아무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짐 몇 가지만 챙기고 가는 여행. 훌쩍 바다를 보러, 별을 보러 떠나는.. 그런 머리보다는 마음을 따르는 여행이었다. 주말에 쉬는 것마저 '투두 리스트'를 가지고 계획 강박으로 사는 나.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평소 내 안전한 행동반경을 잘 벗어나지 않는 모범생이라서 더 그럴 것이다.
그래서 올해 3월의 한 주말은 아주 이례적이었다.
그저 혼자 여행을 한 번 가보고 싶었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멍 때리고 책이나 읽고 싶었다.
보통은 이 별 것도 아닌 바람을 그저 바람으로만 남기는 내가. 그걸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처음으로 혼자 반 즉흥 여행을 떠났고,
그게 나의 작은 사이드프로젝트의 시작이 되었다.
<먼슬리 여행노트>라고 애칭도 붙였다.
혹시라도 내가 또 작심삼일으로 온갖 ‘떠날 수 없는’ 핑계를 찾아댈 경우를 방지하여,
기본 포맷은
1. 혼자서 2. 1박2일로 3. 한 달에 한 번 가는 걸로.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게 될 수도, 그리고 하루 이상 머무르고 싶은 곳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라운드룰은 아무리 바쁘고 귀찮아도 솔직히 다 핑계일만큼 쉬운 정도. 딱, 그 정도로.
여행지도 그때 그때 꽂히는 데로 가고,
계획보다는 흐름에 맞기는 여행으로 두려고 한다.
열두 번의 여행 후에 나는
무언가를 찾고, 채울 수 있을까?
나의 첫 주말여행의 행선지는 <동해> 였다. 동해 바다 전체를 지칭하는 동해 말고, 동해시의 동해. 동해 바다도 몇 번 가본 적은 없지만, 동해시에 와본 적은 더 없다. 원래는 강원도 바다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강릉이나 속초를 가볼까 했다. 그러나 강릉은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았고, 속초는 (나로서는 왜인지 이해가 안 가지만) KTX가 정차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블로그에서 동해, 그리고 묵호 혼자 여행기를 발견했다. 바다가 있었으며, 1박 2일 왔다 가기에는 적당히 볼 것도 충분한 동네 같아 보였다.
언젠가 한 블로그에서 강원도 바다를 내향적-외향적 성향으로 묘사한 글을 보았다. 이걸 요즘 유행하던 MBTI로 따지자면.. 강릉과 속초는 좀 더 "E" 성향에 가까운 외향적인 바다, 그리고 동해나 삼척은 "I" 성향에 가까운 내향적인 바다로 분류할 수 있을까?
잘 모르지만 적어도 동해는 그런 바다 같다. 조용하고 소박하다. 강릉의 바다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지만 그래서일까 더 정겹다. 속초의 바다보다 물 색깔이 덜 예쁠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은 느낌이 드는 바다다. 나도 그쪽에 가까우지 않을까 하고, 괜히 이 동네가 마음에 들어 나를 슬며시 엮어본다.
모름지기 완전한 '즉흥' 여행이란.. KTX 티켓팅도 마음을 먹은 즉시 행하고, 숙소는 일단 모르겠고 곧바로 출발해야 좀 더 들어맞을까 싶다만(?) 평소의 나에겐 이번 여행도 충분히 즉흥에 가까운 편이었다. 꽤 바로 마음먹자마자 KTX 시간을 알아보았으며, 숙박도 예약해버렸다.
종이책을 잘 읽는 편은 아니지만, 왠지 여행엔 또 종이책 읽는 맛이 있을 것 같아 책도 주문했다. 김영하 님의 <여행의 이유>. 여행 간다고 제목에서부터 여행이라는 단어를 박은 책이라니. 유치해 보이기도 하고, 여행 별로 안 가봤다고 티 내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이 이렇게 나도 소박한 여행기를 남겨보아야겠다 마음먹게 한 원인이 되었으니, 나에게는 이번 여행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너무 고심하지 않는 편이다.
운 좋게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된다.
여행의 이유 by 김영하
동해로 향하는 KTX 열차 안에서 책을 읽으며, 아 나도 이런 마음으로 나의 짧은 여행에 임해봐야지 생각했다. 계획이랄 것도 별로 없지만 계획대로 순조로우면 좋은 것이고, 아니라면 나도 글로 남겨보거나 여행 에피소드로 지인들과 공유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계획 강박을 가지고 살아가던 내가 스스로 채워놓았던 목줄에서 벗어난 것 같이 느껴졌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난 이틀 동안 정말 내 예상대로, 계획대로 흘러간 것은 반절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은 반절이 특히 마음에 든다. 조금 더 넓혀서 여행뿐만이 아니라 인생도 그렇겠구나, 하고 생각을 뻗쳐본다. 나는 늘 내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계획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그렇게 순순히 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그건 내가 뭘 어찌할 수 없는 영역임을 알면서도 스트레스받고 불안해했었다. 뻔하디 뻔한 말일 수도 있겠다만, '좀 더 여행자의 마음으로 내 인생도 대해보자' 하고 마음먹어 본다.
이 글의 정체가 일기인지, 여행기인지.. 아니면 동해 여행코스 추천 정도가 될지 잘 모르겠지만..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선명할 때 나의 소박한 감상을 차근차근 남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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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0-21
3월의 먼슬리여행노트
동해/묵호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