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동해 여행 02|플레이리스트엔 Bruno Major와 함께
서울역에서 동해역까지 가는 KTX는 하루에 단 4개의 시간밖에 없다. 오전에 2개, 오후에 2개. 오전에 출발하는 열차는 07:01, 그리고 11:01 두 개였다 (왜 정각이 아니고 1분일까?). 떠나기 일주일 전 KTX와 숙박을 먼저 예약했던 나는, 고민하다가 7시는 너무 이른 것 같아 11시로 예약을 했다. '어차피 내가 뭐 많은걸 하러 떠나는 것도 아니고...' 하는 마음. 그리고 출발하기 하루 전, 나는 또 마음을 바꿨다. 그래 이왕 가는 거 일찍 가자. 다행히 KTX는 하루 전 시간을 바꾸는 대가로 아무런 수수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막상 시간을 바꾸고 나니, 그날따라 밤 12시, 새벽 1시가 되어서도 피곤한데 잠에 못 들던 나는 괜한 짓을 했나 후회했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아침에도 찌뿌둥한 몸으로 일어나며 '아 괜히 나답지 않게 또 무슨 여행을 간다고 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짐을 대강 챙기며,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동해시의 날씨도 찾아보았다. 아뿔싸 근데 이게 웬걸... 비 소식이다. 오늘 동해는 하루 종일 흐리고 비가 온다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우산까지 챙겨야겠구나. 그렇게 출발하기 전까지 나는 여행을 앞둔 사람이라기엔 설렘보다는 그저 귀찮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정말 나답다 ㅎㅎ.
아침 7시의 서울역은 토요일이지만 한산했다. 열차 안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역시 이 코시국에는 열차 안에서는 계속 마스크를 써달라는 안내, 그리고 절대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안내 방송이 계속해서 나왔다. 그냥 타려다가 그래도 입이 심심할 것 같아 과자 하나와 소세지 하나를 샀던 나는, 산 것들을 그대로 고이 다시 가방에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왠지 기차 하면 안에서 간식 까먹는 맛인데, 코로나는 이런 정겨운 풍습(?) 마저 없애는구나.
출발 전에 보았던 블로그 글에서, 동해행 KTX는 꼭 <<왼쪽>>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내용을 보았다. 창 밖으로 바다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기한 점은 바다가 시작되는 구간에 앞서 친절하게 방송도 해주신다. 왼쪽에서 아름다운 동해 바다가 펼쳐지니 열차 안에서 잘 감상하시라고.
그렇게 출발 전까지만 해도 귀찮음 한 가득이었던 나의 마음이 바다를 보는 순간 풀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졸다가 읽다가 졸다가 읽다가를 반복했던 나의 야심 찬 여행 준비물 <여행의 이유> 책도 왠지 바다를 감상하며 읽으니 더 좋게 느껴졌다. 흐려서 을씨년스럽기도 했지만, 그런 흐린 바다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정확히 두 시간 사십 분쯤 걸렸을까. 오전 10시도 안되어 동해역에 떨어진 나는, 우선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미리 일찍 도착하니 짐만 보관하겠다고 양해를 구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전날 이용객이 없어서 일찍 체크인을 해주셨다.
숙소는 인쓰리게스트하우스. 사실 게스트하우스는 처음이라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너무너무 좋았다. 2인실은 아마도 예약 당시 이미 차있었던 것 같고, 코로나로 4인 도미토리를 혼자 사용할 수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기준 주말 1일 35,000원이었는데, 가성비 최고. 혼자 묵는거니 너무 비싸고 좋은 숙소까지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여러 명이랑 셰어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코로나라 꺼려지고, 이왕이면 바다랑 가깝고도 깔끔했으면 좋겠던 나에게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자 이제 도착했으니 뭘 할까는.. 열차 안에서 찾아두었던 블로그 포스팅을 기반으로 폭풍 검색질. 11시에 오픈하는 소바 맛집 가기. 네이버 지도에 찍어보니 숙소에서 30분 정도가 걸린다. 걷자.
가족들이 들으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오버액션하며 놀랄 일이다. '네가 그걸 굳이 걸어갈 생각을 했다고~~?' ㅋㅋ 30분 걷는 것 가지고 장난하냐 싶겠지만.. 집에서 워낙 저질체력 이미지에 (나 그 정도 아닌데..) 평소에 걸을 일도 잘 없으니까. 다행히 길을 나서니 그때는 비도 내리지 않았다. 럭키.. 날씨도 그리 춥진 않았다.
해안가를 따라 여유롭게 걸었다. 플레이리스트는 Bruno Major 노래들. 바닷가를 걸으며 들으니 그렇게나 따뜻한 목소리와 잔잔한 비트가 찰떡일 수가 없다. 어떤 노래는 들을 때마다 그 노래를 들었던 어떤 특정 순간으로, 시절로 우리를 데려가고는 한다. 앞으로 나에게 특히 이 두 곡은.. 들을 때마다 이 날의 동해 바다로 나를 데려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날 눈에 담았던 깊은 동해 바다와 작은 해안가 숲길의 흙냄새, 그리고 흐린 날의 옅은 바람 소리가 떠오를 것 같다.
여행은, 그냥 좋아하던 노래에 조금 더 특별한 추억을 얹어주기도 한다.
<그날의 플레이리스트>
♪ Bruno Major - The Most Beautiful Thing
https://www.youtube.com/watch?v=1nml-_YE2OU
♪ Bruno Major - Places We Won't Walk
https://www.youtube.com/watch?v=HwgzNYCSi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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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0-21
3월의 먼슬리여행노트
동해/묵호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