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동해 여행 03|커피숍 찾아 동해까지 왔습니다
오전 11시 정각. 그렇게 여유롭게 해안가를 걸어 음식점 근처에 도착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평소에 혼밥, 혼영.. 온갖 혼자 하는 것들을 꽤나 잘하는 편이라 생각하는데도 근처에 도착해서 잠시 머뭇거렸다. 너무 땡- 오픈하자마자 혼자 음식점에 불쑥 들어오는 내가 혹시 어떻게 보일까? 이상하게 보는거 아냐? 하며 또 버릇처럼 남 의식을 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생각하건대, 정말 하등 쓸데없는 걱정이다.
내가 찾은 곳은 동해시 소바 맛집으로 유명한 @소복소복. 소복소복이라는 단어와 소바는 어울릴듯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하얀 눈 같은 빙수를 파는 집이었다면 좀 더 어울린다 느꼈을까? 가게 간판을 보니, 笑福笑福이라고 한자로도 쓰여있다. '아, 웃으면 복이 온다와 같은 느낌의 소복소복인가봐'하고 잠깐새에 혼자 별 것 아닌 깨달음을 얻으며 음식점에 들어간다.
오 이건, 맛집 포스. 들어선 음식점에는 맛집으로 유명한 곳임을 증명하듯, 갓 오픈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테이블이 거의 1/3은 차있었다. 아무리 토요일 오전이래도 11시 땡 하고 겨우 5분도 안됨을 감안하면 피크 타임에는 정말 대기줄이 길겠구나 싶었다. 오픈하자마자 도착해서 자리를 꿰차다니. 나는 실상 맛집탐방가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괜스레 내가 전국 소문난 맛집을 탐방하는 고독한 미식가라도 된 것 같이 느껴졌다.
메뉴판도 따로 없고, 벽에 가격 없는 사진 메뉴 4가지가 붙어있다. 하나는 새우소바, 하나는 라멘, 또 하나도 다른 라멘..? 그리고 마지막은 새우튀김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미 오기 전부터 새우소바를 먹을 셈이었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음식점에는 또 어떤 손님들이 와있나 슥- 구경 한 번 하고 (혼밥을 할 때면 괜히 또 나 같은 혼밥러가 있나 보게 된다), 핸드폰을 좀 보다 보니 얼마 안 지나 주문한 소바가 나왔다.
우선 비주얼은 기대와 같이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먼저 새우튀김을 하나 집어 먹어보니, 튀김이 아주 신선했다. 보통은 이런 면에 들어있는 튀김은 좀 눅눅한 편인데, 확연히 신선하고 바삭바삭했다. 자, 다음은 국물과 면. 사실 국물과 면은 아주 특별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내가 아는 메밀소바 맛..? 국물이 좀 더 청량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대기줄이 엄청나다는 맛집 치고는 개인적으론 명성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맛이 없는 건 아니다. 잘 먹지 않는 편인 나도 한 그릇 맛있게 잘 비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명한 맛집이라고 꼭 내 입에도 엄청 맛있다는 보장은 없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달까.
그래서 총평은, 맛은 있었지만 긴 대기줄 끝에 먹었다면 조금은 억울할 뻔한 맛 (아 아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먹었다면 오히려 더 맛있었으려나?).
확실히 글로 남겨야지 마음먹고 먹었던 음식은 이렇게 국물의 온도와 새우튀김옷의 바삭함까지, 어제 먹은 듯 기억에 선명하다. 새삼 글쓰기의 위력을 실감하며.
그렇게 12시도 안되어서 배까지 부른 나는, 또다시 걸어서 오션뷰 카페에 가기로 정했다. 나의 목적지는 @할리스동해묵호점. 소복소복에서는 설렁설렁 걸어서 10분 정도, 거의 코 앞인듯 하였다.
음식점에 걸어올 때까지만 해도 비가 안 왔는데, 다 먹고 문을 나서려니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우산을 펴야 하는 귀찮음이 생기긴 했지만, 아까 30분 걸어올 때 비가 안 왔던 게 얼마나 다행인가? 다시 기분 좋게 우산을 핀다.
조금 걷다 보니 할리스 건물은 눈에 쉽게 띈다. 아 저기구나- 하고 우선 눈에 찜해둔다. 원래는 비도 오니 곧바로 건물로 들어가려다가, 그래도 바다는 가까이 한 번 보고 가야 하지 않겠어! 하며 야심 차게 기찻길로 내려가 보았다.
이런 기찻길을 건너갈 때면, 기차도 안 오지만 괜히 심장이 쫄깃하다. 저 멀리 기차 정수리 조차도 보이지 않는건만.. 기찻길에 5초 이상을 서있지 못했다. 그런데도 웬걸. 잠깐 기찻길을 건너가는 것만으로 이상한 쾌감이 든다. 쫄보의 일상 속 소소한 성취감.
빗방울도 투둑 투둑 떨어지고, 비가 오니 바람이 차져서 바다를 오래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가까이 직접 몸으로 느끼는 바다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평소에 '등산을 굳이 힘들게 왜 가나.. 유튜브로 볼 수 있는걸' 또는 '바다.. 보는 거 좋지. 근데 좋은 것도 몇 분 아닌가. 나는 금방 질릴걸'이라고 생각했던 게 좀 무식한 소리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떠난다.
가서 거기 있고 싶어 하고 직접 내 몸으로 느끼고 싶어한다.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는 뉴욕이나 파리에 몸소 가지 않아도 자기 집 쇼파에서 충분히 유명한 관광지나 미술관 같은 것들을 다 구경할 수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가서 보고 싶어한다. 거기 있고 싶어한다.
코로나로 모두가 여행, 여행 아쉬운 노래를 부르게 된 요즈음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출렁이던 회색초록빛 바다를 보던 그때가 '아 나도 인간이기는 한가봐' 싶은 순간이었달까. 내 안의 숨겨져있던 여행 본능이 조금 깨어난 느낌이었달까.
유튜브로 동해 바다 영상은 질리도록 볼 수 있겠지만. 더군다나 이렇게 흐리지도 않고 더 날 좋은 때의 멋진 바다 영상이 차고 넘치겠지만.. 그 어떤 영상 속 바다도 내 눈앞의 '그' 바다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잠깐의 바다 감상을 마치고 카페에 들어섰다. 평소 매사에 취향이 분명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 그럼에도 카페가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좋아한다 느끼는데, 이 카페는 진짜 내 취향이었다. 널찍널찍한 공간, 3층까지 다양한 좌석들. 하나 특별한 점은 거의 모든 좌석이 바다가 훤히 보이는 통유리창 방향을 향해 있다는 것. 애초에 이 카페에 오려고 동해에 오기로 마음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짜 말 그대로 이 카페에서 바다 보면서 멍 때리거나 책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차표를 끊었던 거니까.
따뜻한 라떼와 함께 유리창 너머 바다를 구경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힐링이었다.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꽤 많이 찾아왔지만, 일찍 좋은 자리를 차지한 자는 여유로운 법. 책 좀 읽고 노트북 좀 하고, 바다 보며 멍 좀 때리고 하다 보니 시간은 또 금세 흘렀다.
뭐 딱히 체력을 쓸 일도 아니었건만 계속 걸어서 이동한 탓일까?(^^;) 급 피곤이 몰려왔다.
시간은 오후 4시.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그래 동해에 왔으니 저녁은 회를 먹어야 하지 않겠어?' 찾아보니 여기서 묵호항이 멀지 않다. 그런데 고민은 가서 사느냐, 그냥 귀찮고 혼자 사기도 겁나는데 배달을 해먹느냐 였다. 진짜로 그냥 배달해 먹을까 하는 생각으로, 배민에서 검색까지 하며 마음이 한 70프로까지도 기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지 않은 것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최고의 결정이었다.
나는 원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의 생각을 크게 가치있게 두지 않는 편이었다. 뭐 꼭 여기까지 왔다고 새로운걸, 대단한걸 해봐야 하나? 시간을 억지로 꽉꽉 채워야 하나? 그냥 내가 제일 좋은 대로 하면 되지..하는 생각이랄까 (그래서 전에는 굳이 뉴질랜드에 가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엄마는 그 멀리, 자연경관 좋은 곳까지 가서 영화관을 갈 일이니?라고 했지만 난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또 언제 뉴질랜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지 알겠는가? ㅎㅎ). 그런데 이번에는 결론적으로,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의 생각으로 묵호항에 가길 참 잘했다. 동해 여행기로 끝날 수 있었던 나의 여행기가 동해/묵호 여행기가 될 수 있었던게 다 이 결정 때문이니까.
인생은 정말 선택의 연속이고, 때로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더 아름다운 면을 발견한다는 것은 클리셰 이기도 하지만, 또 진리가 아닐지. 묵호는 내가 동해로 떠나오는 여행 계획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나의 이 여행기에는 아마도 제일 멋진 추억의 일부분으로 남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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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0-21.03.21
3월의 먼슬리여행노트
동해/묵호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