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동해 여행 04|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또 코앞이네
카카오택시를 호출해 묵호항으로 향했다. 나의 목적지는 묵호항 수산시장. 회를 뜰 수 있는 곳!
택시 아저씨가 내가 왠지 관광객 같아 보였는지 '묵호항을 가는거냐', '전망대를 가려고 하는거냐' 하고 두 번이나 물으셨다. 잘 모르겠지만 회센터 옆에도 전망대가 하나 있나본데, 아저씨는 내가 거기를 가려고 한 줄 아셨나 보다.
"여행 온 거죠? 저 전망대는 볼 게 없어. 요 옆으로 길 따라 쭉 올라가면 저 위에 전망대가 있어요. 거기서 보는 게 볼 만해요" 하고 상냥하게 말씀을 건네셨다. 난 사실 이 전망대도, 그 전망대도 가려고 온 게 아니긴 하지만.. 아저씨의 작은 친절이 감사해서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하고 짐짓 몰랐던 척 대답했다.
"네 경사가 좀 높긴 한데 가서 볼만해요. 지금 식사하실 건 아니잖아요, 그죠? 이따가 내려와서는 이짝 말고 저짝에 있는 회센터 가서 드시면 되고." 하고 한 마디 더 덧붙이신다.
그렇게 택시에서 예상치 못하게 꿀팁을 두 개나 얻었다.
하나, 언덕길 위 전망대에 올라가 볼 것. 둘, 회센터는 '이짝' 말고 '저짝'의 것으로.
아저씨가 말한 길은 @논골담길 이었다. 떠나오기 전 묵호에 숙소를 잡을까도 생각했었기 때문에, 묵호 주변 가볼 만한 곳으로 포스팅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난 정말로 회만 떠서 갈 생각이었는걸. 논골담길은 내 머릿속 후보조차도 아니었는걸.
올라가는 길을 슥 한번 쳐다보았다. 사진에서 봤던 대로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갈까 말까..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 30초 정도 고민했다. 좀 피곤하긴 한데 저녁 시간까진 아직 시간이 좀 남았고. 회센터 옆이 논골담길인줄은 전혀 몰랐는데, 친절한 택시 아저씨 덕에 또 이렇게 알게 되었고. 그래, 그냥 지나치기에는 입구가 너무 내 코 앞이었다. 나의 계획에 논골담길이 그렇게 불쑥 찾아 들어왔다.
올라가는 길에는 형형색색의 바람개비들이 바람에 팽팽 신나게 돌고 있었다. 예쁜 색들로 칠해진 벽화와 계단에 쓰인 글귀도 헉헉대며 감상했다. 경사는 역시나 엄청났다. 내가 이렇게 헉헉 대는 건 마스크 때문에 그런 거야..라고 없어 보이는 셀프 변명을 하며 그렇게 언덕길을 올랐다.
엇- 길을 조금 오르다 보니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등대오름길'과 왼쪽 '바람의 언덕' 가는 길. 논골담길에 대해 제대로 찾아보고 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순간 굉장한 고민을 했다. 갈림길 중간에 서서, 급히 핸드폰을 꺼내 [논골담길 등대오름길 바람의언덕] 하고 검색해보았지만, 단박에 내가 지금 찾는 정보가 나오진 않았다. 포스팅들을 조금 살펴보아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뭘 그렇게까지.. 싶어 졌다. 둘 다 여유롭게 둘러보면 될 일이기도 하지만 난 하나를 선택할 마음이었으므로.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기로 했다.
나의 선택은 바람의 언덕. 이유는? 이름이 예뻐서 ㅎㅎ. 이게 또 뭐라고, 아니면 말지 싶으면서도 잘한 선택이었을까? 이 길의 끝에 나오는 바람의언덕이 내가 생각하던 그 전망대가 맞을까? 하며 괜스레 설레면서도 조금은 걱정되는 마음으로 길을 올랐다.
그리고 얼마 오르지 않아 바람의언덕 이라는 곳을 만났다. 아마도 내가 생각했던, 그리고 택시아저씨가 말씀하셨던 그 전망대가 여기 맞지 않을까 싶다 (그냥 그렇게 믿는다). 블로그 포스팅에서 함께 본 기억이 있는 논골카페도 만났다. 결국 나의 선택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나는 끝끝내 등대오름길로 가면 무엇이 나오는지 가보지도, 찾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바람의언덕이 더 좋은 선택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종일 카페에 있다 오는 길이었기 때문에, 카페 내부에 들어가 보진 않았다. 그렇지만 사진에서 보던 것과 같이 너무나 예쁜 전망의 카페였다. 잠깐 커피잔 모양의 조형물 앞, 벤치에 앉아 바다 구경을 했다. 아래에서 가까이 보는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탁 트인 전망이 그렇게나 시원했다. 비도 마침 그쳐줘서 다행이었다. 춥지도 않고, 적당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웃음 새듯 새어 나왔다.
주위에서 아이들 두 명이 부는 커다란 비눗방울에 나도 시선을 따라 이 비눗방울, 저 비눗방울이 가는 길을 쳐다보며 잠시 잠깐 또 멍을 때리기도 했다. '나 어렸을 때는(=라떼는) 저렇게 큰 비눗방울 없었는데..' 재밌겠다. 나도 한 번만 해보고 싶다. 하며 철 없이 애들 것을 속으로 좀 탐내기도 하고.
날씨가 흐려서, 아마도 맑은 날 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는 했지만. 오히려 덕분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한적한 것 같아 좋았다. 애초에 강릉과 속초보다 덜 핫플인 동해를 찾은 게 바로 그 이유도 있었으니까.
내려오는 길에도 예쁜 벽화와 바람개비들이 가득했다. 구경하며 내려오니 금세 내려옴! 생각보다 논골담길 코스는 체력 쩌리인 내가 다녀오기에도 무리 없었다. 내가 짧게 돌아 내려온 것일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다 내려오니까 이런 표지판이 있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아마 내가 내려온 길이 다들 보통은 시작점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인 걸까 싶다. 하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길치인 내가 자신 있게 할 말까진 아니지만, 길은 돌아가도 다 길인가 보다.
내가 가게 될지 전혀 몰랐기에 뜻밖에 더 좋았던 논골담길이었다. 동해에 간다면 꼭 가볼 만한 곳이다.
내려와서 꽤 많은 사람들이 포스팅을 했던 대게빵 집도 발견했다. 순간 또 고민했다. 먹어볼까 말까? 이번 여행으로 다시 한번 깨달은 건, 할까 말까 할 때는 하기. 특히 나는 안 하고 말 때가 더 많은 사람이니까 무조건 하기.
뭐 울진 대게빵이니 여기가 원조도 아닌데 굳이..? 싶기도 했다. 근데 그럼 내가 울진에 가게 될 가능성은? 아니 가더라도 꼭 이 대게빵 집을 만날 가능성은? 하고 생각하니 묵호대게빵이 아니라 울진대게빵이면 또 어떤가 싶었다.
대게빵은 생각보다 더 맛있었다. 블로그 후기에는 의견이 좀 갈렸던 것 같은데, 호두과자와 붕어빵을 참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것도 맛있었다. 약간 짭조름한 맛과 대게향이 빵, 그리고 그 속의 팥과 어우러진.. 단짠 느낌?
가격은 1개에 2천원. 싸진 않다. 하지만 뭐.. 여행에서는 돈보다는 경험의 가치에 더 관대해지는 편이다. 한 개만 우선 먹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먹다 보니 가족 생각이 났다.
결국 회를 사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러서 엄마랑 동생 주려고 작은 박스를 하나 더 산다. 누군가를 위해 맛있는 것을 사는 마음은 언제라도 참 좋다.
그렇게 짧은 묵호 관광을 마치고, 순식간에 손에 든 대게빵 하나도 다 해치워버리고.
이제 진짜 원래 목적지였던 회센터로 향한다.
프로계획러에게 무계획 속 만나는 뜻밖의 행복이란
스쳐 지나가는 택시 아저씨가, 그리고 우연히 만난 2천원짜리 대게빵 하나가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쾌감은 생각보다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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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0-21.03.21
3월의 먼슬리여행노트
동해/묵호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