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단양 여행 02|접니다. 혼자 하러 온 여자.
떠나던 그날은 날씨가 참 좋았다. 파란 5월 말의 하늘. 패러글라이딩과 같은 레포츠는 무엇보다 날씨가 중요함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맑은 하늘은 그날따라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다. 인터넷 검색창을 열고 [단양 오늘 날씨]를 검색해보았다. 다행히도 단양 역시 오늘 하루 종일 맑음이다. 룰루랄라, 날씨마저 날 도와주네. 기분 좋게 조촐한 짐을 척척 챙겼다.
그런 나를 반전이 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까딱하면 그날 패러글라이딩을 못할 뻔했다. 갑자기 비가 와서? 음 아니다. 다치거나 아파서? 다행이 아니다. 그날의 기억을 조금씩 거슬러올라가 본다.
오전 9시. 단양행 KTX에 몸을 실었다. 청량리역에서 단양역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단양은 커녕 서울 수도권을 별로 벗어나본 적 없는 나는 '생각보다 꽤 가깝네?' 하고 생각했다. 아직은 더운 여름이 오기 전, 이런 좋은 날씨를 놓칠 수 없는 다른 사람들 역시 둘둘 넷넷, 단양 또는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듯했다. 열차에 여행을 시작하는 설레임의 공기가 가득했다.
떠나기 전 단양 패러글라이딩 하고 검색하니 관련 업체들이 줄줄이 떴다. 너무 많은 광고에 어지러워지려던 그때, 나처럼 여자 혼자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떠난 분의 포스팅을 발견했다. 그래 이거다, 하고 감사한 그분의 행적을 똑같이 밟기로 했다.
나는 썸데이게스트하우스라는 아주 분위기 있어 보이는 루프탑이 있는 숙소 한 곳을 예약했고, 그곳과 제휴된 패러글라이딩 업체였던 패러일번지라는 곳에 패러글라이딩도 미리 예약했다. 11시 즈음 예약된 시간에 맞춰 단양역 또는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픽업을 와주시는 서비스! 아주 굿 아닌가. 나는 이왕 가는 거 오전에 이번 여행의 본 목적을 바로 달성해버리자!라는 일념 하에 바로 단양역으로 픽업 신청을 했다.
꽤 많은 사람들 사이에 뒤섞여 단양역을 빠져나왔다. 왼쪽 한켠에 패러글라이딩 업체들에서 나온 승합차들이 나란히 서서 우리를 태우길 기다리고 있다. 단양역을 거쳐 게스트하우스까지, 내가 탄 회색 스타렉스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떠나는 사람들을 한 자리도 빠짐없이 가득 태웠다.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패러글라이딩은 혼자력(力) 레벨이 꽤나 높은 액티비티이려나? 이제는 쑥스러움을 넘어 이런 혼자력 만렙인 스스로가 조금은 대견스러워질 지경이다.
차는 구비구비 산을 꽤 한참을 올라갔다. '아 언제 도착해..?' 싶어 지려는 찰나, 차창 밖에 하나둘씩 하늘에 떠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와아-. 제각기 모였지만 차에 탄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한 마음으로 설레어했다. 두근두근. 나도 조금 실감이 난다. 패러글라이딩. 진짜 하러 온 거구나, 나도!
도착해서 비용을 결제하고, 카키색 비행복으로 갈아입었다. 오 진짜 비행하는 느낌 좀 나는걸. 혼자 왔기에 사진도 내가 찍어준다 (셀카를 부끄러워하지 마!)
얕은 언덕을 올라가니, 나와 같은 비행복으로 갈아입은 사람들과 전문 패러글라이더 분들이 모여있다. 꽤나 높이 올라온 산의 높이를 실감하듯 파란 하늘이 머리 위로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바람은 조금 불었지만 날이 아주 맑았다. 패러글라이딩하기 좋은 날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즈음에야 알았다. 그렇다. 패러글라이딩 관점으로 날씨를 논하자면 조금 달리 말해야 하는 것이다. 바람은 조금 불었지만 날이 아주 맑은 것이 아니라, 날은 맑았지만 바람이 조금 많이 불었다.
패러글라이딩은 눈이 와도 할 수 있지만, 바람이 많이 불면 할 수 없는 액티비티라고 한다. 이제는 알고 적으니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아니 당연히, 햇빛 쨍쨍하면 하기 좋은 날씨인 줄 알았지!
언덕 위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 나는 모습을 구경하며 기다렸다. 드디어 내 순서도 가까워졌는지 장비를 착용시켜주셨다. '그런데 어 이거 웬걸-' 바람이 조금씩 더 세진다. 바로 내 앞 순서의 사람들이 바람 때문에 몇 차례씩 제대로 이륙에 성공하지 못했다.
패러글라이딩은 요원분들의 말만 잘 따르면 꽤나 쉽고 안전한 레포츠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고가 이륙 시에 난다고 한다. 그래서 바람이 세지면 바로 중단하는 액티비티 이기도 하다. 반은 뒤늦게 엄습하는 약간의 두려움, 반은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못 하고 돌아가는 거 아닌지'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뒤죽박죽 했다.
철수할지 말지를 가늠하시는 분위기. 그러던 와중에 내 차례가 다가왔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철수할 만큼 바람이 거세지기 전이었나 보다.
"앞으로 하면 앞으로, 뒤로 하면 뒤로. 함께 잘 달려주셔야 해요. 말씀드리는 대로만 해주시면 절대 사고 안 나요. 아시겠죠?"
"..네!!"
나와 이제 운명을 함께하게 될 글라이더 분과 인사를 하고 주의사항을 새겨 들었다. 어쩐지 포스가 있으신 아저씨. 베테랑 포스가 팍팍 난다. 다행이야, 이젠 이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내 운명을 맡겨야 하니까.
언덕 위에 서있는데 생각보다 높이가 주는 공포감은 전혀 없었다. 그보다는 내 옆에서 바람이 점점 세게 불어서 자꾸 꼬이는 장비들이 괜히 더 무서웠다. 두려움은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내 생각에서 오는 게 맞는구나 체감했다. '아저씨가 실수하시면 어떡하지?' '내 장비가 꼬이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하면 급 두려워졌다. 이젠 그냥 이 아저씨와 하늘의 뜻을 믿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자 갑니다. 앞으로!"
내 뒤편에서 나와 한 몸이 된 글라이더 슨생님의 구령에 따라 앞으로 뛰기 시작한다. 두 손으로는 셀카봉에 연결된 액션캠을 들고. 아, 정확하게는 뛴다고 쓰고 걷는다 읽는다. 바람 때문에 몸이 말을 말을 안 들었다. 왼쪽- 오른쪽- 어어어-. 뭐야 이러다가 넘어지는 거 아냐? 하는 순간 발에 디딜 땅이 사라졌다. 바둥바둥. 눈앞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카키색 내 두 다리만 보였다.
다행히 이륙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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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9-21.05.30
5월의 먼슬리여행노트
단양 1박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