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의 입
국정원은 평소보다 일찍 움직였다.
비밀회의는 오전 7시에 소집되었고, 그날 오후 2시, 정부는 전국에 생중계되는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기조 발표자는 정보위원회 소속 차장이었고, 그의 뒤에는 땀에 젖은 양복 차림의 참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프로젝터에는 PPT 화면이 떴고, 제목은 이랬다.
《세종대왕 동상 사건: 인공지능 기반 여론 조작 시나리오 분석》
누가 봐도 촌스러운 윤곽선, 너무 뻔한 글씨체, 배경에 깔린 태극기 이미지.
첫 장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본 사건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특정 세력이 AI를 활용해 국민 심리를 조작하려는 명백한 시도입니다.”
현장에 있던 기자 중 누군가가 피식 웃었고, 생방송 도중 그 웃음소리는 편집 없이 송출되었다.
곧이어 등장한 ‘증거 영상’은 한 유튜버가 만든 밈 영상이었다.
세종대왕 동상에 눈물을 CG로 흘리는 장면과 그 위에 깔린 내레이션,
“지금 이 나라는, 말이 없다. 그래서 세종이 운다.”
그게 국정원이 말하는 ‘여론 조작의 실체’였다.
모니터 앞의 시청자들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진짜, 이게 나라냐.”
그 직전, 국정원은 이미 모종의 행동을 시도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있었다.
며칠 전 새벽, 청와대 인근 일부 부대의 통신이 이상하게 끊겼고,
몇몇 기자단은 대통령의 동선을 추적하려다 보안 요원들에게 제지당했다.
‘비상계엄 검토’라는 단어가 군 내부 문건에서 언급되었다는 뉴스는
빠르게 삭제되었지만 이미 캡처가 퍼졌다.
공식 해명은 “전시 대비 훈련의 일환”이었지만,
누가 봐도 그것은 어설픈 자가발전식 쿠데타 시도의 불씨처럼 보였다.
국정원은 그 흔적을 덮기 위해 동상 사건에 화살을 돌렸다.
‘AI 여론조작’이라는 프레임으로 세종의 땀을 ‘작위적인 심리전’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나 발표는 조잡했다. 어설픈 음모론, 허술한 논리,
그리고 정작 핵심에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표정이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 한 기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주도한 세력은 정확히 누구입니까?”
국정원 차장은 머뭇거렸다. 그러고는 준비된 듯한 멘트로 답했다.
“정확한 단서는 확보 중이며, 현재 다수의 혐의자가 내부 불만세력과 연계되어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기자는 다시 물었다.
“그 ‘내부 불만세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조직입니까?”
이번엔 답이 없었다. 대신 마이크가 꺼졌다.
그날 밤, 인터넷은 다시 한번 폭발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요약했다.
“역대 가장 준비 안 되고, 가장 허술하게 시도된 쿠데타. 누구를 위한 연극이었는지도 모른 채 끝난, 부끄러운 시도였다.”
광화문 광장에는 또다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 손에 들린 팻말은 단순했다.
“세종은 거짓말을 싫어하신다."
“진실을 말하지 못할 바엔 침묵이라도 하라.”
“이젠, 조작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잡해졌다.”
하지만 가장 주목받은 건 한 아이의 손에 들린 스케치북이었다.
그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세종이 울고 있어요. 근데 어른들은 계속 웃네요.”
다음 날, 서울역 전광판에 이 문장이 전면 광고로 떴다.
광고주는 익명, 그러나 메시지는 명확했다.
정권은 허둥거렸고, 시민은 더 똑똑해졌으며, 언론은 어느 편에도 설 수 없을 만큼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진 세상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동상은 다시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