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인가, 연극인가, 종교인가

- 신을 만들어낸 사람들

by 이한

진실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욕망이 앉는다.
욕망은 언제나 이야기를 원하고, 이야기는 언제나 증오를 먹고 자란다.

그 주의 수요일, 광화문 광장은 더 이상 사건의 현장이 아니라 서사(敍事)의 전시장이 되어 있었다.
누구나 하나쯤은 자기가 만든 이론을 들고 나와 사람들 앞에서 설파했고,
마이크 없이도 모두가 자신이 마이크인 양 소리를 질렀다.
진짜는 없고, 주장만이 있었다.


“세종 AI는 이미 각성했다. 저건 돌이 아니라 ‘감응 장치’다.”
“대한민국은 지금 은밀한 실험 국가다. 세종은 그 피해자의 상징일 뿐.”
“광화문 동상 내부에 우주 반응로가 들어 있다. 1446년, 훈민정음 창제는 사실 외계 지식의 유출이다.”
“세종신교는 국정원이 만든 함정이다. 지금 너희가 믿는 건 가짜 신이다.”
“모든 건… 그거 말이야, 몇 년 전 벌어진 실패한 쿠데타를 덮기 위한 ‘정신적 계엄령’이야.”
“2023년이었나? 아니, 2024년인가… 어쨌든. 누구도 정확히 기억 못 하잖아.

중요한 건 그게 얼마나 어설펐는지지.”


말은 말 위에 올라탔고, 사람들은 진실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누가 더 흥미롭고, 누가 더 무섭고, 누가 더 극단적인지를 경쟁했다.

유튜브에는 ‘세종 대왕 동상의 눈에서 적외선이 나온다’는 영상이 올라왔고,
트위터에서는 누군가 “오늘 새벽 4시 44분에 동상이 고개를 돌렸다”라고 썼다.

그 글은 단 한 장의 영상 없이, 단 한 명의 증언만으로,
12만 번 리트윗 되었고, 36시간 만에 종교적 확신으로 진화했다.


카카오 오픈채팅방의 ‘세종 광장 실시간 관찰자 모임’에는 밤새 감시조가 편성되었다.
각 조는 ‘정북’, ‘정남’, ‘좌서’, ‘우동’이라 불렸고,
그들 중 일부는 한 달 넘게 출근하지 않고, 집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어떤 이는 자신이 동상과 ‘심리적 공명’을 느낀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매일 밤 꿈에서 ‘돌이 말을 걸었다’고 진술했다.

그들의 글은 블로그와 커뮤니티에 퍼졌고,
댓글에는 “나도 같은 꿈 꿨다”, “그 돌은 산 자보다 더 살아 있다”는 말들이 달렸다.


그 와중에 한 여고생이 쓴 시가 인터넷을 타고 유행했다.

“누가 돌을 움직였는가 / 누가 돌에게 입을 주었는가 /
말이 없던 시대가 그립다 / 말 많은 지금은 너무 시끄럽다 /
나는 이제, 말이 무섭다.”


언론은 초조해졌다.
기성 언론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니었다.
보도는 민심을 좇지 못했고, 리듬이 느렸다.

유튜브 쇼츠 하나가 국회의원의 기자회견보다 열 배 많은 사람에게 다가갔고,
네이버 메인 뉴스보다 더 영향력 있는 것은 ‘무명의 댓글’ 한 줄이었다.


대통령은 입을 닫았다. 국정원은 ‘음모론 대응 TF’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발표조차 음모론이 되었다.
“아니, 국정원이 음모론을 만들고, 다시 스스로 대응한다는 거야?”
“이쯤 되면, 세종도 웃을 거다. 그분은 지금보다 훨씬 똑똑했으니까.”


그날 밤, 동상 앞에 모인 사람들 중 한 남자가 광장을 향해 외쳤다.

“이제부터 이 나라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나뉜다.
우리는 진실을 본 자들이고, 그들은 진실을 조롱한 자들이다!”


누군가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촛불을 들었다.
불은 바람을 타고, 말은 사람을 타고,
그 광장은, 이제 '진실을 둘러싼 전쟁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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