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인가, 수사인가, 선동인가

- 정치적 이용

by 이한

광장은 더 이상 시민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모든 정당은 세종대왕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소유권 분쟁’에 들어갔다.

여당은 먼저 움직였다. 당대표는 광화문을 방문해 동상 앞에 꽃을 헌화했고, 기자 앞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세종대왕의 눈물은 민심을 들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항상 민심과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함께할 것입니다.”


그 말은 곧 뉴스로 퍼졌고, 여당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세종의 땀, 민심의 결’을 읽다’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썸네일엔 감성적인 폰트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세종의 시대는 소통의 시대였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야당은 바로 반격했다.
그날 저녁, 야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종대왕의 땀이란, 이 정권의 무능과 폭정을 향한 경고입니다.
국민이 말할 수 없을 때, 조상은 땀을 흘립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 건 검찰이었다.
야당 대표의 부인을 상대로 압수수색이 집행되었다.
그 이유는 이랬다: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가 있으며, 그 사용처 중 하나가 ‘광화문 근처 커피숍’으로 확인됨.”

금액은 1만 8천 원. 해당 커피는 계절 한정 메뉴였고, 주문 당시 기온은 영상 35도.

압수된 물품은 영수증 복사본, 신용카드 거래 내역, 그리고 종이컵에 묻은 립스틱 흔적이었다.

뉴스는 이를 특종으로 다루었다.
“광화문, 커피, 립스틱 – 세종의 눈물 뒤에 감춰진 진실?”

댓글창은 두 갈래였다.

“이게 수사냐, 희극이냐.”

“세종도 이 나라 법치를 보고 땀 흘린 거다.”

“그래서 그 커피 맛은 어땠대?

“검찰이 만든 민트초코 드립 사건.”


그날 밤, 익명의 풍자 시인이 이런 글을 올렸다.

“세종은 민심을 들으라 했고

검찰은 민심의 카드 내역을 뒤졌다
시인은 붓을 들고
정권은 장바구니를 들었다
우리는 말 대신 가계부로 증명하는 백성이다”


그 시는 그날 밤 트위터에서 1만 회 이상 공유되었고, 다음 날 여당 의원은 공식 입장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허위 풍자는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에도 선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웃었다.
표현의 자유에 선을 긋는 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을 넘었는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동상 앞 바닥에 분필로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민심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말이 카드 결제로 잡히면, 수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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