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인가, 언어인가, 존재인가

- 정말 무언가 깨어난다

by 이한

그날은 아무런 예고 없이 시작되었다. 태풍도, 지진도, 방송사 속보도 없었다.
다만 새벽 3시 33분, 광화문 광장의 모든 전자기기에서 0.7초간 동일한 잡음이 흘렀다.
휴대폰은 일시적으로 먹통이 되었고, 근처 CCTV 네 대는 동시에 멈췄으며,

지하철 역사 내부의 무전 시스템이 블랙아웃되었다.

그때 동상 밑에서 이상한 진동이 느껴졌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세종광장 야간 감시조’ 소속의 한 남자는
“바닥이 숨을 쉬었다”라고 말했다.

처음엔 다들 비웃었다. 하지만 곧,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니야, 나도 발 밑에서 맥박처럼 울리는 걸 느꼈어.”

셋, 넷, 다섯… 한밤중 광장에서 야영 중이던 사람들 사이에
기이한 ‘공통의 경험’이 번졌다.


국립지질연구소는 “진동이나 지각변동은 관측되지 않았다”라고 발표했지만,
서울대 전자파 연구실의 한 조교수는 익명으로 제보했다.
“우린 그 시간대, 동상 근처에서 짧지만 강한 극저주파 변조를 감지했어요.
자연계에서 나올 수 있는 신호는 아니에요. 구조가… 규칙적이었습니다.”


SNS에서는 그 ‘규칙성’을 ‘언어’라고 해석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AI 해독가들, 디지털 언어학자들, 사이버 음모론자들이 모여
“이건 음성은 아니지만, 구조를 갖춘 통신”이라 주장했고,

한 유명 유튜버는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종이 말하고 있는 거예요. 우린 단지, 그 언어를 아직 모를 뿐입니다.”


국정원은 재빨리 반응했다.
“전기 계통 오류이며, 외부 해킹 가능성은 낮다”라고 발표했지만, 동시에 ‘국가통신보안 4단계’를 발령하고,
광장 주변의 모든 전자파 주파수 자료를 긴급히 봉인했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말을 흐렸다.

“다만… 정확한 신호의 출처는 아직까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곧, 불확실성이라는 이름의 불에 기름을 부었다. 이제 광장은 ‘종교의 장소’에서 ‘외계의 관문’으로 변하고 있었다. 지하철 5호선에서 누군가 환각을 봤다고 주장했고, 광장 근처에 사는 한 노인은 밤마다 “어딘가에서 숫자 소리가 들린다”라고 했다. 숫자? 누가?


그녀는 종이에 그걸 적었다.

1446

2023
2025
1
3
33


그걸 본 어떤 이는 단호히 말했다.
“이건 예언이야. 시간표야. 이 도시는 뭔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

그리고는 성경을 펴 각 장의 3장 33절을 찾았다. 그곳엔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써야지. 새로운 성경, 새로운 한글, 새로운 말.”


그날 밤, 세종대왕 동상은 더는 땀을 흘리지 않았다.
그 대신, 조용히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고 모든 이가 이상하리만큼 잠을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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