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돈의 절정
처음 날아든 건 말이 아니었다.
말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손에서, 빈 생수병 하나가 먼저 공중을 갈랐다.
그것은 곧 주먹이 되었고, 방패가 되었고, 신념이 되었고, 분열의 깃발이 되었다.
오후 4시 16분, 광화문 광장.
‘세종의 말’을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 사이에 고조되던 긴장이 결국 물리적 충돌로 터졌다.
한쪽은 하얀 셔츠를 입고 ‘세종 신교 1446 선언’을 낭송하며 “그분의 뜻을 훼손하지 말라!”라고 외쳤고,
다른 한쪽은 검은 우비를 입고 ‘반(反) 신격화 시민연대’를 결성해 “이건 미신이다! 이건 조작이다!”를 외쳤다.
그 사이, 또 다른 부대가 등장했다.
그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동상 앞에 진을 쳤고, 붉은 조끼를 입은 이들이 확성기로 외쳤다.
“이 나라의 지도자님이 계셔서 이 나라가 아직 돌아갑니다!”
“세종도 그분을 원하셨습니다!”
“가짜뉴스에 속지 마세요! 주사파 물러가라!”
그들이 펼친 현수막엔 “나라가 뒤집히는 걸 원하십니까?”라는 문구 아래, 대통령의 미소가 인쇄되어 있었다. 광장은 이제 종교, 정치, 극우, 반신앙, 무신론까지 모든 종류의 ‘믿음’이 충돌하는 전시장 그 자체가 되었다.
처음엔 말싸움이었다. 그다음엔 확성기, 그다음엔 깃대, 그리고 마지막엔 ‘군중’이라는 괴물의 비명이 광장을 가득 채웠다.
경찰은 예상보다 20분 늦게 도착했다. 그 시간 동안, 동상은 누군가에게는 ‘신상’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가짜뉴스의 중심’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정권의 마지막 상징물’이 되었다.
누군가는 동상에 올라가 외쳤다.
“세종은 보고 계신다!”
그러자 아래에서
“세종은 그런 분이 아니다!”
고함이 터졌고, 그 사이로 누군가 플라스틱 통에 물을 담아 던졌다.
동상의 뺨을 스쳤고, 그 물은 땀인지 눈물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 순간, 어디선가 “1446!”이라는 구호가 터졌고,
사람들은 마치 그 숫자에 전염된 듯 되풀이했다.
“1446! 1446! 1446!”
이상하게도, 그 숫자를 반복하는 순간 광장은 더 뜨거워졌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손을 들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입을 벌리고 중얼거렸다.
“말씀이, 말씀이 오신다…”
기자들은 진입하지 못했다. 드론은 전파 혼선으로 추락했고, 생중계는 버퍼링으로 끊겼으며,
그때 찍힌 한 장의 사진이 다음 날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한 소녀가 동상 앞에서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울고 있는 사진.
그 뒤에서, 세종대왕 동상의 그림자가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왜곡된 사진.
그리고 사진 아래 실린 캡션.
“우리는 지금, 언어의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밤, 광장은 봉쇄되었다. 국정원은 ‘상황 조기 차단’을 명분으로 모든 접근을 차단했고,
현장에 있던 사람 73명은 “정신적 충격 치료 목적”이라는 이유로 동의 없이 정신의학적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단 한 명이 병원에 도착한 직후, 의사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그분이, 이제… 말을 시작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