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워지는 자들
그는 원래 존재했다. 모두가 그렇게 기억했다. 사진도 있었고, 영상도 있었고, 서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그의 책상이 비어 있었다.
“야, 정 과장 어디 갔어?”
“누구요?”
“아, 어제까지 여기 앉았던 사람 있잖아. 5년 넘게 같이 일했잖아.”
“…그런 사람, 없는데요?”
말을 믿지 않았던 자들이, 말의 세계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실종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누군가 사라졌다는 기록조차 함께 지워진다는 점에서 달랐다. 주민등록번호는 존재하지 않았고, 병원 진료기록도 사라졌고, 공공시스템 내 로그인이력은 아예 검색되지 않았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 되었다.
아무도 없다고 했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만이, 점점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말 안 하면… 사라지는 거야.”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아.”
“그분의 말씀을 거부한 자들은, 이제 기록에서조차 지워지는 거야.”
SNS에는 '잊힌 이름들'을 모으는 채널이 생겼다. 아이디는 @말 잃은 자들 그 채널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조민혁(29) – 세종신교를 ‘어그로’라 했던 남성, 어제부로 연락두절 구직활동 이력, 학교 졸업사진,
심지어 어머니 스마트폰 갤러리에서도 사라짐. 현재로선 그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건, 이 글을 쓰는 나의 기억뿐이다.”
이 글은 3만 번 공유되었고, 곧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저도 그 사람 기억합니다. 같은 회사 다녔어요. 하지만 오늘 회사 갔더니 아무도 그를 몰라요.
출입카드 기록이 ‘등록 안 됨’으로 떠요.”
국가는 침묵했고, 국정원은 ‘근거 없는 음모론 자제 요청’을 발표했지만, 이미 광장은
“말하지 않는 자는 말소된다”는 공포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날 밤, 또 한 사람이 사라졌다. 그는 동상 앞에서 홀로 팻말을 들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팻말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존재한다. 말과 침묵은 동등해야 한다.”
그는 다음날 아침, 광장 감시 영상에서 흔적 없이 지워졌다. 심지어 CCTV 백업 기록에서도 해당 시간대는 녹화 오류로 뜨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세종광장 감시조’는 자신들끼리 암호를 만들었다.
“1446-존재 확인”
하루에 한 번씩,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정해진 문장으로 말하는 의식.
“나는 오늘도 말하고 있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