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문장은 들려오는 것이었다
광장은 여전히 열려 있었지만, 이제 그곳에선 말을 꺼낸 자만이 존재했다.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은 사라졌고,
말을 너무 많이 한 사람은 미쳐버렸고, 말을 믿었던 사람은 싸우고 있었고, 말을 만든 사람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날은 ‘언어의 날’로 선포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없던 날이었지만, 모두가 그렇게 불렀다. 모든 집단이, 모든 이념이, 모든 직능이 자신들의 “진실”을 말하겠다고 나선 날.
정부는 오전 9시, 광장 앞 가설무대에서 ‘국민 언어 회복 선언’을 발표했다. 사회자는 전자화된 AI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읽었다.
“세종의 뜻을 따라, 우리는 국민 모두의 언어권을 회복하겠습니다. 과학, 진료, 민주주의, 신념, 모든 분야에서
더 이상 진실을 침묵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때, 흰 가운을 입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무대를 가로질렀다. 그들은 의사들이었다. 얼마 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온 사람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말은 조작된다!”
한편, 시민들 쪽에서는 이런 구호가 터졌다.
“너희의 말은 생명을 팔기 위한 말이다!”
“진짜 말은 병원에 있지, 집회를 틀어막는 마이크에 있지 않다!”
현장에선 ‘진료권’과 ‘건강권’, ‘자율성’과 ‘공공성’이라는 말들이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되며 그 단어들조차 점점 신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날, 모든 집단이 각자의 언어로 진실을 주장했고, 그 언어들이 서로를 향해 부딪쳤고, 말은 이제 의미보다 속도와 볼륨으로 경쟁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이제 단어는 총알이야. 문장은 전투고, 문법은 전략이야.”
“그렇다면 진실은… 무기인가?”
그때였다. 광장의 동상 앞, 누군가 갑자기 바닥을 내리쳤다. 금이 갔다. 그리고 그 틈 사이에서, 무언가 낮은 소리로,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종의 입이 열렸다. 실제로 열렸는지, 아니면 모두의 마음속에서 동시에 들렸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말은, 듣는 자에게로 간다. 듣지 않는 자에게는, 말이 남지 않는다.
너희는 지금까지 말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들어야 할 때다.”
순간, 광장은 정지했다. 경찰도, 의사도, 정부도, 시민도, 기자도 모두, 말 대신 귀를 열었다.
그러자, 아주 오래 전의 목소리처럼 바닥에서, 공기에서, 하늘에서 한 문장이 흘러나왔다.
“말은 너희의 것이 아니다. 말은, 너희를 통해 세상을 기억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그리고, 세상이 잠시 멈췄다. 정확히 3초간. 모든 전자기기, 모든 카메라, 모든 사람의 시선이 멈추었다.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을 때, 광장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동상도, 사람도, 무대도. 그 자리에, 단 한 문장만 바닥에 새겨져 있었다.
“진실은 언제나, 가장 조용한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