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 페르소나 이론
"넌 참 착한 사람이야."
그 말이 싫었다고 말하면,
너무 나쁜 사람처럼 느껴질까 봐
그냥 웃었다.
그래, 나 착한 사람이야.
어릴 때부터 착하다는 말은
내 이름보다 더 자주 들은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말이
점점 무겁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은
나를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기대를 던지는 말처럼 느껴진다.
칼 융은 ‘페르소나’라는 개념을 말했다.
사람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라,
‘기대되는 모습’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그게 바로 ‘페르소나’, 사회적 가면이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은
내가 쓴 가면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늘 잘 듣고,
늘 미안해하고,
늘 괜찮은 척하고,
늘 조심하면서도 싫은 소리 하나 하지 못했던
그 오래된 착함의 얼굴.
그 가면이
나를 지켜준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가면이
나로 살지 못하게 만든 얼굴이었다는 걸.
착한 사람이라는 말엔
종종 이런 뜻이 숨어 있다.
"너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거잖아."
"너는 참아줄 줄 알지."
"넌 그런 말 할 사람이 아니잖아."
그 말들은
내 침묵을 소비했고,
내 선의를 당연하게 만들었고,
내 경계를 무너뜨렸다.
나는 착한 사람이었지만,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제는 조금씩 말하려고 한다.
"지금은 힘들어요."
"그건 제 감정과 안 맞아요."
"이건 거절하고 싶어요."
착함은 미덕이지만,
경계 없는 착함은 고통이다.
나는 더 이상,
좋은 사람으로만 기억되기 위해
내 마음을 누르고 싶지 않다.
당신에게 남기는 문장: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당신을 지치게 했다면,
이제는 ‘당신 다운 사람’으로 살아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