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끝날 무렵, 나는 가끔 멍하니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 뭐 했지?"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였고, 수십 개의 알림에 반응했고, 할 일은 끊임없이 쌓였고, 어쨌든 ‘열심히 살았다’고 믿고 싶지만 돌아보면 정작 기억나는 순간은 거의 없다. 몸은 바빴는데, 마음은 공허하다. 시간은 흘렀지만, 내가 그 시간 속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물었다. “요즘은 어때?” 그 친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 진짜 바쁘게 살았는데,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 그 말은 나에게 이상하게 익숙했다. 내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했던 말이기도 했으니까.
바쁘게 움직였지만, 남은 건 피로와 공허함뿐. 정작 중요한 일은 손도 못 댔고, 시간은 도망친 것만 같았다.
그런 날엔, 시간을 열심히 썼다기보다 시간에 끌려다녔다는 느낌이 남는다. 우리는 종종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시간이 ‘없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감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쁘다는 말은 마치 위장막처럼 작동한다. 스스로에게 “난 게으르지 않아”라는 안심을 주지만, 사실 그 안에는 진짜 중요한 것에서 눈을 돌리는 회피의 정서도 숨어 있다.
현대인은 바쁨 중독에 가깝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은 죄책감을 유발하고, 멈춤은 무기력으로, 느림은 패배로 간주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도 바빠 보이려고 한다. 카페에서도 노트북을 열고, 회의는 내용보다 ‘존재감’으로 채워진다. 바쁨은 이제 경쟁력의 은어가 되었고, “시간이 없다”는 말은 자기 효용감을 지켜내는 주문처럼 쓰인다. 하지만 그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17세기 철학자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 자신만의 방 안에서 조용히 혼자 머물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는 인간이 멈추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고 봤다. 그래서 끊임없이 ‘산만한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고 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스마트폰, 유튜브, 채팅방, 끊임없는 멀티태스킹이 바로 그 산만함의 시대적 얼굴이다. 우리는 멈추는 것이 두렵기에, 바쁨으로 자신을 방어하는지도 모른다. 정작 그 바쁨은 나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않는데 말이다.
생산성과 ‘할 일’을 맹신하는 세상에서, 시간은 효율적으로 써야만 가치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효율에만 몰두할수록 우리는 시간이 없다고 느낀다. 왜일까? 그 시간은 진짜 ‘내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야 하는 일’을 위해 살아갈 때, ‘하고 싶은 삶’은 자꾸만 미뤄진다.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 시간은 어쩌면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었을 뿐이다.
사실 우리는 바쁘다기보다는 계속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반응하는 동안, 시간은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가 된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더욱 산만함에 붙들려 산다.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 릴스에 무한 스크롤 하면서 보낸 시간을 돌아보면 "연결될수록 단절되고, 외로워졌던 것 같다." 그 시간이 지나고 밀려 들어오는 어떤 공허함. 그 모든 순간은 나의 시간을 다른 이의 리듬에 넘겨주는 동의서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을 2가지로 구분했던 것을 들었다. 크로노스(Chrons)와 카이로스(Kairos). 시계를 따라 흐르는 계량적 시간, 크로노스 그리고 의미가 머무는 순간, 카이로스. 진짜 시간이란, 시계를 따라 흐르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의미가 정박한 카이로스가 아닐까? 어쩌면 삶은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매일매일 바쁜데 돌아보면 40% 이상은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행복도 감소하고, 시간 흐름에 대한 감각도 무너지는 듯하다.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꼭 증발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바쁘지 않은 시간은 나에게 불안을 유발할 때가 많다. 그래서 명상이라는 것을 추천받는데, 명상을 한 날은 정말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마법 같은 날을 체험할 때가 많다. "급할수록 삶의 질은 떨어진다. 모든 깊은 것은 느리다"라는 니체의 뼈 때리는 말이 생각난다.
오늘 하루를 단 5분짜리 영상으로 만든다면 어떤 장면들을 넣을까를 생각해 본다.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던 장면? 회의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있던 장면? 누군가의 말에 잠시 웃었던 순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니 하루의 시간 가치가 새롭게 배치되었다. 나의 하루는 하나의 영화다. 그 영화의 편집권은 물론 나에게 있고.
그리고 오늘 하루를 조용히 돌아보며,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 3개를 적어봤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커피를 마시며 어떤 글을 쓸지 고민했던 내 모습, 저녁 식사시간 가족들과 깔깔거리면서 웃던 모습.
시간은 선언하는 언어 속에서 구조화되는 것 같다. 말을 바꾸면 감각이 바뀌고, 감각이 바뀌면 시간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같다. 몰입했던 순간, 마음이 맑았던 순간, 이런 순간들이 어쩌면 진짜 나에게 있었던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바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진짜 내 시간'을 붙잡아 보는 것, 시간 감각은 그렇게 천천히 다시 살아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천천히 읽고 있는 순간, 당신은 시간을 붙잡고 있는 중인지 모르겠다. 이 몇 분이 당신의 감각을 다시 깨워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