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땀에 젖은 민심
광화문에서 시작된 ‘세종의 땀’은 불과 이틀 만에 전국을 휩쓸었다. 오전 9시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은 정오에 ‘세종이 울었다’는 제목의 뉴스 영상으로 탈바꿈했고, 오후 3시엔 ‘한글이 운다’는 다큐 스타일의 짧은 영상이 SNS에서 30만 회 이상 공유되었다.
저녁이 되자 아예 ‘세종의 땀’ 실시간 카운터를 세는 웹사이트가 등장했고, 그 옆에는 “민심 온도”라는 그래프가 함께 있었다. 사람들이 클릭할 때마다 숫자는 조금씩 움직였고, 누군가는 말했다. “이건 기압계야. 우리는 지금 무언가가 터지기 직전의 공기를 보고 있는 거야.”
그 다음날 아침, 광화문에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직장인, 노점상, 유모차를 민 젊은 엄마들, 목사와 스님, 퇴직한 장성들, 패딩을 입은 고등학생들. 그들은 동상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동상 너머에 있을 ‘말해지지 않은 것’을 들으러 온 듯한 표정이었다. 어떤 이는 침묵했고, 어떤 이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떤 이는 유튜브 생중계를 틀어놓고 “우리는 지금 시대의 경고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질서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서 있었고, 그 적막이 더 무서웠다.
그날 저녁, 지상파 뉴스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쪽은 서울시 기상과학연구소 소장의 설명을 전했다. “결로 현상은 아주 일반적인 기후 반응입니다. 동상 내부가 속이 빈 구조이고, 최근 습도와 이슬점의 변화로 인해…” 하지만 다른 한쪽 뉴스는 현장의 시민 인터뷰를 내보냈다. “세종대왕은 민심을 가장 잘 아셨던 분 아닙니까? 저 땀은 그냥 물이 아닙니다. 요즘 같아선 사람이 아니라 돌도 땀을 흘리죠.” 그리고 또 다른 이는 말했다. “뉴스에서 말하는 과학이 왜 이렇게 비과학적으로 느껴지는 걸까요?”
인터넷 커뮤니티는 폭발했다. 누군가는 단순한 물방울에 정체성을 부여했고, 누군가는 그를 비웃었다. 어떤 이는 이걸 ‘사건’이라 불렀고, 어떤 이는 ‘사건의 조작’이라 했다. 네티즌들은 동상의 옛날 사진과 지금 사진을 비교 분석했고, 실제로는 없던 그림자, 미세한 입꼬리의 곡선, 눈동자의 기울기 등을 근거 삼아 ‘세종 AI 활성화설’, ‘민심 반영 감응체 이론’ 같은 말을 만들어냈다. 진실은 점점 희미해졌고, 그 빈자리를 음모와 해석이 채웠다.
카카오 오픈채팅에는 “세종대왕 땀 사건 실시간 분석방”이 열렸다. 입장자는 1시간 만에 3천 명을 넘겼다. 채팅방의 상단에는 이런 문구가 고정되어 있었다.
“이건 상징이야. 그 상징을 믿는 순간, 현실은 다시 설명되기 시작해.”
청계천 입구에 천막을 친 한 무속인은 “하늘이 뭔가를 알리고 있다”며 즉석 부적을 팔았고, 부적을 산 한 20대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불안한 것보단 낫잖아요”라며 웃었다. 목사 한 명은 교회 앞 현수막에 이렇게 적었다. “세종도 울고 계십니다. 지금은 기도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지하철 5호선 안에서는 이런 낙서가 발견되었다.
“한글은 빛이었다. 지금은 울고 있다.”
심지어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 국회의원은 자신의 SNS에 “세종대왕께서 이 나라의 언어와 정신을 세우신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며, 현 정부의 언어 파괴와 정책 난맥상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반대편 진영의 의원은 “이러한 허황된 소문에 현혹되지 말고, 이성의 언어로 나라를 이끌자”고 맞받았다. 그리고 그날 밤, 여당 대선 캠프에서 ‘민심과 소통하는 지도자’라는 타이틀로 캠프 홍보 영상을 새로 올렸고, 그 배경에는 흐릿한 세종대왕 동상의 실루엣이 있었다.
민심은 여전히 땀에 젖어 있었다. 누구도 그 땀을 닦아내지 못했고, 누구도 그 땀이 멈추길 바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땀은 지금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진심처럼 보이는 무언가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