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땀방울
광화문은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다. 택시에서 내린 남자는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치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의 등 뒤로 쉴 새 없이 차량이 지나가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관광객들의 셔터 소리와 영어, 중국어, 그리고 지방 사투리들이 뒤섞여 공기를 흐렸다. 대로변의 자작나무 가로수들은 미세먼지와 습기로 축 처져 있었고, 이마에 흐른 땀방울 하나가 귀를 타고 내려오자 그는 짜증스레 손등으로 훔쳤다.
바로 그때였다.
그는 우연히 고개를 들었고, 무심코 바라본 그곳에서 멈칫했다. 광화문 광장의 중앙, 익숙한 세종대왕 동상. 그 이마에서, 정말로, 뭔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둘기 배설물이라 생각했다. 아니면 누군가 장난 삼아 물총이라도 쐈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건 물이었다. 맑고 투명하고, 약간은 점성이 있어 보이는… 물. 이마에서, 코 옆을 따라, 양 볼을 타고 턱 아래로, 정숙한 그 동상의 동정(動靜)을 천천히 침범하는 방식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뒤로 물러났다. 뒷걸음치며 주변 사람들을 둘러봤다. 아직 아무도 그 장면을 보지 못한 듯했다. 여전히 셀카에 집중하고, 한복 체험을 즐기며, 아이스크림을 핥고, 무표정하게 스마트폰만 보며 지나치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화면에 잡힌 세종대왕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액정이 고장 난 걸까. 아니, 그건… 표정이었다. 무미건조한 동상의 얼굴에, 일순간 무언가 감정 같은 게 지나간 듯 보였다.
“야, 야… 이거 봐봐.”
그는 지나가는 남녀 커플 중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당황한 그가 뒤돌아보다가 동상을 보았다.
“어, 뭐야…?”
곧장 그의 말이 퍼졌다. “야, 세종대왕이 땀 흘린다!” 두 명, 세 명, 일곱 명.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휴대폰이 솟구쳤다. SNS 생중계, 인스타 스토리, 틱톡 릴스. 각자의 해시태그가 달린 동영상들이 몇 초 만에 퍼져나갔다. 실시간 검색어는 ‘세종대왕 땀’으로 순위 1위를 차지했고, 유튜브 썸네일에는 “드디어 세종이 우셨다?”는 제목과 함께 슬픈 배경음이 깔렸다.
하지만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첫 번째 공식 발표가 나왔다. 서울시 기상청 대변인은 “최근 극심한 기온 변화와 습도 상승으로 인해 동상 표면에 수분이 응결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인터뷰에서는 “결로(結露)”라는 단어가 반복되었다. 서울시청은 현장에 경찰과 과학 수사대를 배치하고, 시민들의 접근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기상청의 발표 다음 날, 다시 광장을 찾은 사람들은 동상의 얼굴이 조금 달라졌다고 말했다. ‘더 슬퍼 보인다’, ‘광대뼈가 내려간 느낌이다’, ‘입꼬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다’. 대부분은 착각이라며 웃고 넘겼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몇몇은 며칠 전 찍은 세종대왕 동상의 사진과 지금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정말로 미세하게 이마 주름의 각도와 눈꼬리의 라인이 달라진 듯 보이는 사진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 금요일.
누군가 동상에 몰래 설치된 소형 스피커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실은 국정원이 만든 감시 장치다”, “이건 민심을 읽는 AI가 조종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원혼이 나라를 경고하고 있다”.
한 유튜브 채널은 ‘세종대왕 동상의 3D 스캔 데이터’를 분석했다며, “예전에는 분명히 눈이 정면을 향했는데, 지금은 아래를 내려다보는 각도다”라고 주장했다. 이 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수 170만을 넘겼고, 해당 유튜버는 정부의 고발조치를 받았지만 구독자는 오히려 10만 명 이상 늘어났다.
이 와중에 이상하게도 광화문 일대의 CCTV 4대가 동시에 고장 났다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서울시 공무원 두 명이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가 동상 주변에 꽃을 놓고 촛불을 켠 사진이 올라왔다. 그날 밤 누군가는 조용히 적어 놓았다.
“세종은 말했다. 이 땅의 글이 더럽혀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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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 현상인가, 조작인가, 시작인가 이어집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