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잠, 유전자의 선물일까?

시간을 다르게 사는 사람들, 그 특별한 리듬의 비밀

by 정로그

밤의 장막이 내려앉고 세상이 고요해질 때, 누군가는 여전히 깨어 있다. 빛 바랜 도시의 불빛을 마주하며, 혼자만의 깊은 시간 속을 걸어가는 사람들. 단 몇 시간의 잠으로도 다시 하루를 열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이들. 마치 시간을 압축해서 쓰는 사람처럼, 그들은 조금 다른 리듬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혹시 그 능력은, 타고난 유전자의 선물이었을까?


우리는 흔히 하루 7~8시간의 수면을 '정상'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기준은 모두에게 유효할까? 단 3~4시간의 짧은 수면만으로도 충분히 활력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른바 '쇼트 슬리퍼(Short Sleeper)'는 수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다시 묻는다. '나에게 필요한 잠'은 정말 어느 만큼일까?


미국의 신경과학자 잉-후이 푸(Ying-Hui Fu) 박사는 이 질문의 해답을 유전자 속에서 찾고 있다. 수년간 잠과 유전자의 연결 고리를 탐색해온 그녀는 최근 '자연적 단시간 수면(NSS)'이라는 특성과 관련된 단서를 SIK3 유전자에서 발견했다.


ⓒFlickr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70대 자원자의 유전체에서 확인된 SIK3 유전자 돌연변이(N783Y)는 평균보다 짧은 수면으로도 충분한 회복을 가능하게 했다. 동일한 변이를 주입한 실험쥐들은 일반 개체보다 수면 시간이 30분 이상 짧았고 생체 리듬 역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돌연변이가 단백질의 인산화 기능을 미세하게 조절하며 잠자는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사실이다. 복잡한 유전자 속 조용한 조율이 인간의 리듬을 결정짓고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놀라운 진실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은 단지 잠을 적게 자는 것이 아니다. 기억력과 면역력, 삶의 회복 탄력성까지 수면의 '질'이 그들의 일상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짧지만 깊은 수면. 그것이야말로 삶을 위한 가장 정교한 재생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 연구는 우리에게 익숙한 기준에서 벗어나 나만의 수면 리듬을 찾는 여정을 제안한다. 유전자 기반의 맞춤형 수면 관리, 그리고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위한 새로운 해결책의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쇼트 슬리퍼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리듬이 있다. 나의 몸이 말하는 소리를 더 귀 기울여 듣는다면, 수면 역시 더 개인적이고 섬세한 방식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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