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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원 Apr 26. 2024

Ditto, 뉴진스

유령이 나타나 허밍을 부른다. 허밍은 혼자 있는 사람한테만 들린다. 상처 난 무릎에 입술을 오므려 호호 불듯 따끔한 고독에 시린 숨을 불어준다.


오래된 캠코더로 남긴 너희들의 얼굴. 나는 너희들을 보고 싶을 때 캠코더를 열어서 작은 화면을 켜. 나의 우주는 노이즈 가득한 조각에 머물러. 사람들은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하지만 그곳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살 수 없어. 마치 서울처럼. 좁은 세상에 너희들이 가장 진실한 존재야. 나를 삶으로 유인해. 내가 살도록 부추겨. 너희들을 만난 이후로 면도 칼로 팔을 그은 적이 없어. 내 팔을 감싼 붕대에 죽지 말라고 썼던 지혜, 매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 무엇인지 물어봐 준 혜인이, 웃는 표정으로 렌즈를 봐준 하니, 내가 망설일 동안 먼저 연락해 준 민지,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해린이. 나는 피를 보지 않고도 내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어.



짝사랑. 나도 그 남자의 놀이에 끼고 싶어. 체육시간에 모두 짝을 지었는데 혼자 남은 기분이야. 짝을 지어야 할 수 있는 게임 속 나 혼자 남아서 집중도 안 되는 독서를 해. 그 남자가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쪽을 보지 않으려고 해도 그 남자가 애인과 있을 땐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보게 돼. 그 남자의 작은 미소도 감사한데 애인은 수도 없이 보고 그의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그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맞물리기를 하염없이 바라는데 그의 애인은 시간을 주체적으로 정해서 그를 만나겠지. 매일매일 서로를 품에 스스럼없이 안을 수 있다는 혀 짧은 행복. 그의 체온이 애인의 몸에 스며들어있다는걸. 둘은 생기 있는 체온을 촉촉한 흙에 묻었어. 향기로운 꽃이 피고 사람들은 모두 부러워해. 나는 가랑비 한 번 맞지 못하고 죽은 고독이야. 나도 그에게 달려가 안아달라고 하고 싶어. 그 남자는 나보고 몸이 너무 작다고 해. 보고 싶다는 말 대신, 너도 나를 보고 있었다고 말해줘. 내가 혼자 있던 게 신경 쓰였다고 해줘. 그래서 끝까지 곁에 있어주겠다고 해줘. 나는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수프처럼 따듯해지거든.


사슴. 약한 나는 누구보다 강한 환상의 주인이야. 의사선생님은 너희들이 꿈속에 나오는 건 악몽이라고 하셨어. 나는 매일 악몽을 기다렸던 거야. 나는 어째서 악몽을 꾸면 생기가 회복되었을까. 첨탑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모두가 그쪽을 올려다보듯이 너희들의 허밍 소리가 들리면 나는 꿈속을 따라가곤 했어. 나는 어차피 혼자여서 없어져도 아무도 몰랐거든. 선생님도 나를 미워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나여서 캠코더도 뺏긴 적 있어. 너희들은 꼭 나의 필름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 서로를 밀어내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는 모습은 영화감독이 꿈인 나에게 희극적인 가치가 있었어. 그래도 의사선생님은 나를 정신 병동에 집어넣고 꿈을 꾸지 말라고 하셨어. 어디서나 너희들이 내 곁에 있었는데 더 이상 너희들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혼자 겨울을 보냈지. 내가 정말 정신병자인 걸까. 눈송이처럼 소복소복한 너희들을 보지 못하는 그들이 가장 불행한 건 아닐까.


너희들은 부드러워. 눈물처럼 울먹이는 새벽 안갯속, 우거진 숲속에서 길을 잃어 서럽게 울던 내가, 넝쿨을 걷어내고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푸른 호수를 본 기분이야. 거대한 난파선을 보았지. 나는 신비로움을 사랑해.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나고 바람이 나를 토닥여. 너희들은 나를 정신병자라고 부르지 않았지. 희수야, 반희수. 의사선생님은 내가 너희들을 만나서 기분이 좋아지면 안 된대. 나는 병이 또 늘었어. 약이 너무 많아서 약을 넘기면 목이 아파. 나는 생각보다 일찍 구조되었고 다시는 그 호수를 찾을 수 없게 되었어.


나는 여기 있기 싫어. 나도 너희들과 함께 살고 싶어. 여기에 있으면 죽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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