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1이 감정의 본질에 대해 다뤘다면 인사이드 아웃 2는 관계의 본질에 대해 다룬다.
인간은 관계지향적이다. 뇌의 우반구가 표정과 어조, 몸짓 언어를 이해한다. 라일리가 친구들의 표정을 살폈던 것도 신체 지향적인 활동이다. 에릭 잘 네드가 말한다. "죄책감은 우리가 오늘날의 지식으로 과거를 되돌아볼 때 생긴다" 즉, 우리의 지식이 한 층씩 성장할수록 과거를 반추할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주는 give 것이 아닌 주어지는 gave 것이다. 이 말은 라일리도 '사춘기'라는 버튼이 주어짐으로써 섬세한 감정의 폭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본적인 사회적 욕구는 사회화에 기여한다. 그래서 양육자의 역할은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감정과 충동을 자제할 수 있도록. 관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감정도 성숙해진다.
여러 감정들의 흥분상태로 라일리가 격앙된 학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울증 환자인 내가 봤을 땐 너무 건강한 사람이다. 나에겐 질병의 폭풍 속에서 불안과 슬픔만이 생존해있고 나머지는 실종된 느낌이다. 라일리는 오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고 나는 혀가 마비된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푸아그라를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다. 좋은 감정이 다가와도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과연 털 없고 순전한 이 감정을 끌어안아도 괜찮을까. 나는 더러운데.
신념이 모여 자아가 된다는 기쁨이의 대사가 인상 깊다. 신념의 바다에 나쁜 기억의 구슬들이 빠졌는데 신념들이 충돌하다가 이내 모든 감정이 혼란스러운 자아를 끌어안아준다. 나는 그 해결책에서 다소 급작스러운 전개 같다고 생각했다. 현재 내 상황이 더 복잡해서일까. 좀 더 라일리의 내적 갈등을 창의적으로 풀어내길 바랐는데, '디즈니'식으로 풀어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순수함'을 자본으로 팔아 사람들의 감동을 사는 치밀함. 어찌 되었건 우리는 감정의 해석과정을 거치고 삶의 충만함을 누리기 위해선 감정이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