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과 고통의 나눔
장마가 시작되었다. 며칠 전부터 후덥지근한 여름 같은 더위를 보이더니 어느새 장마란다.
휴일인 오늘도 주룩주룩 비 내리는 도서관 창가에 앉아 글을 쓸까 책을 읽을까 잠시 생각하다, 여행 관련 도서를 집어와 읽는다.
아이고야~!!!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글이 나를 읽는 건지 내가 글을 읽는 건지 이해도 안 되고 집중도 안되고...
다시 뭘 할까 생각하며 비 내리는 공원의 창 밖을 바라보다 귀엽고 우아하신 노노카페의 실버 바리스타님이 내려주시는 커피 한잔을 주문한다.
모처럼 쉬는 귀한 휴일을 이렇게 허송세월 보내면 안 되는데... 책을 읽던, 블로그에 글을 쓰던, 뭐든 해야 하는데 도무지 뭘 할지 몰라 방황하다 노트북을 열었다.
여전히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다,
7년 전 임차인이었던 영어학원 원장님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다.
이 일은 내가 아파트를 모두 매도하여 무주택자로 상가만 갖고 있던 상황에 일어난 이야기다.
내 상가는 학원자리로 아주 좋은 입지를 갖고 있다. 초등학교 두 개와 고등학교 하나가 인근 200미터 내에 있고 대단지 아파트 밀집지역과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곳이라 입지로는 최상이다.
상가를 산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임차인인 원장님이 학원을 매도하겠다고 했다. 어떤 이유로 매도하려고 하는지 궁금했지만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묻고 싶은 마음을 접었다. 한두 번 보증금 조율을 해달라며 전화가 오더니, 시간이 갈수록 반드시 팔고야 말겠다는 다급함마저 느껴졌다. 여전히 궁금했지만 이유를 물을 순 없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의 그 다급함에는 이유가 있었다.
모든 큰 사고에는 피해자와 생존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생존자의 이야기에는 늘 어떤 ‘간발의 차이’가 있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그랬고, 911 테로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도 그랬다. 큰 사고는 늘 이렇게 삶의 방향을 가른다.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하고, 누군가는 살아남아 그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그 무렵, 이야기의 ‘주인공’이 학원을 인수했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원장님으로 바뀌어 2년 계약을 했다. 그분은 60세를 목전에 둔 나이로, 평생 일자리를 꿈꾸며 학원을 인수했다. 재계약이 번거롭다며 굳이 1년이 아닌 2년으로 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인수절차를 마친 뒤, 그는 새로운 부푼 꿈을 안고 영어학원의 새로운 원장님으로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때가 2018년 12월쯤이었다.
내가 이 일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소설책이나 영화에서나 봤을법한 일이
실제로 나에게, 우리에게,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새 원장님은 호기롭게 일을 시작했다. 본인이 연세가 있으니 젊은 여자선생님을 부원장으로 두고 운영을 했다. 2019년 1월, 2월, 3월까지 월세가 꼬박꼬박 제 날짜에 들어왔다.
뉴스에서는 시종일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중국 우한의 전염병을 보도했다. 유튜브 영상들은 '바이러스'라는 영화와 같은 일이 실제 일어날지 모른다고 두려움과 공포감을 더욱 조장했다.
설마... 그냥 단순 감기겠지.... 영화는 영화고 소설은 소설일 뿐, 현실이 될 순 없다라며 나를 비롯한 전 세계인들은 폭풍전야를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채 평범한 일상을 이어갔다.
영화 같은, 소설 같은 일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대와 바람과는 달리 현실이 되었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로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바이러스는 유럽에 상륙해 많은 희생자를 낳았으며 어느새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급하게 매도한 전 원장님의 선견지명은 우연일까 아님 어디에서 정보를 들은 걸까!!!
내게 전화까지 해서 무조건 팔 수 있도록 협조부탁한다고 부탁에 부탁을 거듭했었다.
우리나라도 감염자 수가 조금씩 오르는 상황 속에 뉴스에서는 착한 임대업자 캠페인을 보도했다.
상생!
서로 북돋우며 함께 잘 살아간다는 뜻으로,
고통을 조금씩 나누자는 취지로,
건물주들에게 캠페인 동참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