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그깟 폭우 따위에 원룸건물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절박한 삶에서 배운 단단한 의지에 대하여

by 란스케이프

시기는 장마였다.

눅눅한 습도로 인해 거실 바닥도 방바닥도 끈적끈적했다.

계절도 날씨도 내 마음을 아는 듯 눅눅하고 끈끈했다.


'역사는 인간을 현명하게 하고,

시는 지혜롭게 하고,

수학은 치밀하게 하고,

철학은 심원하게 하고.

윤리학은 중후하게 하고.

논리학과 수리학은 담론에 능하게 한다.

따라서 학문은 인격이 된다.'

ㅡ프랜시스 베이컨ㅡ

이 글이 눈을 멈추게 한다.


'철학은 심원하게 한다'

이 글귀에서 눈이 떼어지질 않는다.

'생각을 심오하게 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구나.'


내 삶을 잠시 돌아보았다.

조금 더 심원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

얕은 지식으로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이 살아온 게 내 삶의 방식이 아니던가.


이미 내 나이는 50대 중반,

앞자리 6을 향해 가고 있는데 현실의 나는 무주택자.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온몸으로 절감했다.


때마침 평택의 어느 부동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좋은 물건이 있으니 한 번 보라고.


장마로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었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창 밖을 보니,

어느덧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장대 같은 비인들 나의 바람을 꺾을 수 있으랴.

그깟 비 따위에 내 초라한 현실을 타협할 순 없었다.


차를 몰고 오산에 다다랐을 무렵,

어느새 장대 같은 비는 폭우로 변했고,

마치 바닷속을 달리는 듯 앞이 하얗게 흐려졌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악천후라 해서 내 의지가 꺾일 리없다.

그 어떤 장애물도 난관도 폭풍우도 내 앞길을 막을 순 없었다.

인간의 초인적 힘은 극한의 어려운 상태에 발휘된다 했던가.


미국 소설가 아서 골든이 말했다.

"역경은 세찬 바람과 같다.

역경은 찢어질 수 없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우리들로부터 빼앗아 가 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가를 알아차리게 된다."


나는 50대 중반의,

내 몸 하나 편히 누울 수 없는 무주택자.

집주인이 나가라면 어쩔 도리 없이 이사해야 하는 삶.

이곳저곳을 2년에 한 번씩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 나의 현실이 되었다.


머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염색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이미 폐경을 지나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 나에게,

이런 시련과 역경은

모든 것을 빼앗아간 것과 다름없었다.


그깟 장대비가 나를 막을 순 없었다.

게릴라성 폭우가 나를 막을 순 없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은

이상 후퇴도 철회도 포기도 없다.

그게 바로 내가 처한 상황였다.


임장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찻집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차를 마시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평택이야.”

친구는 소리쳤다.

"너 미친 거 아니야?

지금 물난리가 나서 온 방송국이 비 피해로 들썩들썩인데 제정신이야?"

나는 조용히 웃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극한에 몰리면 못 할 게 없는.

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에너자이저!!


그리고 아서 골든은 그것을 일깨워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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