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건물, 그리고 미다스의 시험
원룸건물을 사려고 하루가 멀다 하고 평택을 오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폭우를 만나기도 했고,
사기꾼 같은 사람도 만났고,
따뜻한 중개업소 사장님도 만나는 등 다사다난한 여정이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건물이 있었다.
코너에 위치한 건물은 1층 상가의 가시거리가 탁월해,
어떤 상가가 들어와도 장사가 잘될 법한 입지였다.
건물 옆 2층을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면,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금프레임을 두른 그림 벽타일이 층층이 있다. 고급짐이 물씬 풍겼다.
4층 전층을 차지한 주인세대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구조도 크기도 비슷해서인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고급진 느낌.
'이거다!' 싶었다.
첫눈에 홀딱 반해 버린 사랑은
다른 건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장이 요동친다.
"빨리 와,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왜 이제 왔어? 너를 기다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그 마음, 누가 알 수 있으랴?
부산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첫눈에 홀딱 반한 건물이지만, 성급하게 계약할 수는 없다. 빨리 건물주가 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을 다독이고, 여행을 하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은 없을까' 꼼꼼히 따져보며 시간을 벌기로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무척이나 더운 한 여름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해운대 바다를 보며,
잊혀지지 않는 첫사랑처럼 그 건물은 머릿속에서 떠날 줄 모른다. '내일 올라가는 대로 계약을 하리라!'
한차례 거센 소나기가 몰아쳤다.
해운대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커피의 맛과 향은 커피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고,
내 마음속 기대감은 한껏 부풀었다.
부산에 내려오기 전, 중개인에게 5천만 원만 깎아달라고 제안을 했다.
"연락드릴게요"라는 중개인의 전화를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여행 내내 기다렸다.
내 마음은 이미 그 건물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곧 올 것 같은 전화는 예상과 달리 오지 않았다.
평택에서 부산으로 어둠의 그림자가 조금씩 조금씩 스며드는 듯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집에 오자마자 중개업소에 전화하니,
매도인은 단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주인할머니가 암 투병 중으로 상가건물보다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하셨다. 주인할아버지도 그에 동의하셔서 건물을 시장에 내놓으셨는데, 5천만 원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으셨나 보다.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 왕에 관한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미다스 왕은 술의 왕인 디오니소스에게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성급하게 소원했다. 그는 이 능력이 가져올 부와 영광만을 생각했을 뿐, 그 이면의 대가를 고려하지 않았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했고, 심지어 사랑하는 딸까지 황금이 되어버린다.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5천만 원을 더 벌기 위해 매도를 포기하셨다. 미다스 왕처럼 과욕을 부리신 거다.
과연 충분히 생각하시고 내린 결정이셨을까.
상가건물이라는 것이 쉽게 팔리는 부동산이 아니다.
매수세가 있을 때 파는 것이 적기다. 5천만 원을 아까워하다 미다스 왕과 같은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시다니!
그런데 나도 참 이상하지.
숨 넘어갈 듯 건물에 대한 절절한 애정과 사랑이
5천만 원 깎아줄 수 없다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차갑게 식어버리다니. 사랑, 참 희한하다.
그 일이 있고 3년 후, 중개업소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께서 생각을 바꾸시고 5천만 원 깎아주시겠대요".
나는 이미, 건물주의 삶을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