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끝에 맞이한 나만의 건물
건물을 사기 위해 수원을 비롯해 용인, 기흥, 신갈, 안양, 의왕, 향남, 오산, 평택 등등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건물 임장과정은 어떤 두려움도 불안도 없는 순수한 설렘과 즐거움 자체였다.
이 건물에 외벽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가스배관이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설치되어 건물에 가치를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벽에 금이 가서 누수의 우려는 없는지 하나하나 살피는 일이 마치 보물을 찾아다니는 탐험 같았다.
건물 매입을 하는데 기쁨과 설렘만 있었겠는가. 당연히 감당할 수 없는 난관도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큰 도전이기도 했다.
가장 큰 벽은 바로 ‘대출’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자, 정부는 대출을 적극 억제하고 있었다. 내게는 사실상 넘기 힘든 커다란 벽이었다. 가능한 모든 은행에 문의를 했고, 심지어 지인의 소개로 평촌에 있는 한 은행의 본부장을 만나 직접 상담도 받았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대출은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은 당황스럽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해서 건물을 살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 (Steve Jobs)는 말했다. "새로운 것을 탐색할 용기가 없다면, 진짜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라고.
도전은 성공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삶에 진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모두가 가는 길이 정답일 수는 없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도전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진정한 도전 아니겠는가.
우리나라는 '전세'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어,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자금을 일부 충당할 수 있다. 흔히 갭 투자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대출을 받으려고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이자가 워낙 낮았기 때문이다. 나의 수입을 조금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국가 간 경제 교류가 통제되면서, 세계 각국은 앞다투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무역이 멈추면 급격히 얼어붙는다. 수출입의 둔화는 곧 경기침체를 의미했고,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금리를 인하했다. 금리가 낮아지면 예금금리뿐 아니라 대출금리도 함께 내려간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은행에 이자를 내고도 세입자들에게 받은 임대료가 더 많았기에, 나는 대출이라는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판단했다.
드디어 사고 싶는 건물을 정했다. 나와 한평생 함께 할 건물을 결정한 것이다. 계약금을 보냈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아니. 미루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내 건물을 청소하고 싶었다. 도어록을 교체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며 공간 하나하나를 내 손으로 손질하고 싶었다. 각 호실마다 도배도 해보고 싶었고, 욕실 바닥과 변기 이음새에 있는 곰팡이 낀 실리콘에 락스를 뿌려 하얗게 바뀌는 걸 보고 싶었다. 문틀에 겹겹이 쌓인 해 묵은 먼지를 닦아내며, 내 손으로 달라진 방의 모습을 하루라도 빨리 마주하고 싶었다.
중개업소를 드나들며 시간이 날 때마다 임대업에 대한 공부에 매진했다. 나의 멘토이자 사수는 건물주로서 갖춰야 할 자세를 이렇게 말했다.
"건물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갖추고 직접 수리할 줄 알아야 하며, 무엇보다 건물의 ‘기를 이겨내는’ 힘이 필요하다".
나는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노자가 한 말이다.
“외적인 용기는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과 싸우며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임장을 다닐 때면, 나는 종종 건물의 기에 눌리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이 처럼 큰 금액의 부동산을 거래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두려움과 불안은 더 크게 밀려왔다.
앞날을 알 수 없다는 긴장감에 마음이 떨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멘토는 말했다.
“건물주는 두려움 앞에서도, 스스로의 용기로 그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그 말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계약금을 보낸 다음 날부터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그것이 두려움으로 오기도 했고, 건물주의 뿌듯함으로 오기도 했고, 어쩔 때는 혹여나 있을 어떤 안 좋은 일에 대한 불안함으로 오기도 했다. 그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하루는 기쁨으로, 또 하루는 설렘으로. 또 어떤 하루는 걱정으로 중도금을 지불했다.
잔금을 치르던 날, 이른 새벽 건물주 삶에 축복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했다. 마지막 남은 잔금과 중개비를 모두 송금한 후, 나는 내 건물에 첫발을 디뎠다. 주차장을 천천히 가로질러 한 걸음씩 옮겼다.
첫 계단 하나를 오르며, 무사히 잔금을 치른 것에 대한 감사함이 밀려왔다.
두 번째 계단을 오르며, 지난 3년간 무주택자로서 고군분투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세 번째 계단에서는, 이 건물을 갖기까지 도움을 준 많은 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차올랐다.
그리고 네 번째 계단을 오를 즈음, 남들처럼 아파트를 샀다면 겪지 않았을 수많은 마음고생을 딛고 여기까지 온 나 자신이 참 단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여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토록 나를 기다려준 건물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벽을 어루만지고, 난간과 각 층의 집 문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나 마음이 울컥하고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눈물이 온몸에 흘렀다. 그리고 힘이 빠졌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되뇌일뿐...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이 건물은 내 것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무주택자가 아니고, 나의 노후를 든든히 지켜줄 천군만마와 같은 자산을 얻었고, 건물주로 새로운 인생을 부여받았다. 나와 함께 늙어갈 나의 든든한 터전이다.
친구 중 한 명이 내게 물었다. "원룸건물은 관리하기가 까다롭다던데 왜 하필 그걸 사려고 해? 상가 관리하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잖아".
나는 차분히 대답했다.
" 친구야, 내 이름 석자 앞에 어떤 직함이 붙는다는 건, 단지 돈과 명예만 얻는 일이 아니야. 그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까지도 한 몸처럼 짊어지는 것, 그게 진짜 오너지."
그렇다. 건물주의 삶은 세입자들에게서 월세만 받는 사람이 아니다. 재활용부터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관리는 당연한 필수이며, 계단 청소와 담배꽁초 정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면, 부대비용 절감을 위해 도배는 물론이고, 입주 청소와 설비교체 같은 자잘한 일까지도 직접 처리하는 것이 건물주의 몫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하수구가 막히거나 누수가 발생하는 등 예기치 않은 문제들도 건물주가 해결해야 할 임무이고 책임이다.
남들은 허드렛일이라며 여기는 일을, 나는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감내하고 있다. 2년간 건물주를 꿈꾸며, 나는 직접 청소하는 삶을 그려왔다. 내 건물을 내 손으로 직접 청소하길 소원하며 지금까지 왔다.
"나의 노후를 편안하고 안락함으로 책임져 줄 고마운 건물 앞에서, 그깟 일이 대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