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대신 감사로
한 학생이 속상한 얼굴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방을 옆 의자에 툭 던지듯 내려놓더니,
말없이 핸드폰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 우리 반에서 왕따 됐다. 아, 진짜 열받아."
영호는 몇 마디 말실수로 오해를 샀고, 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이와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다. 그 아이가 부정적인 소문을 퍼뜨렸고, 몇몇 아이들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평소엔 다른 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업 중엔 수업만 듣고, 쉬는 시간에는 다른 반 친구들과 놀면 그만이다.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지내니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장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 같은 행사가 있을 때는 다르다. 같은 반에서 활동해야 하고, 버스를 탈 때에는 짝을 지어야 한다. 영호는 바로 그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자존심과 자존감, 그 차이를 아는 사람?"
"자존심은 당당한 거고요. 자존감은... 몰라요. 비슷한 거 아니에요, 선생님?"
"영호야! 자존심은 타인의 평가에 기대어 나를 지키는 것이고, 자존감은 내가 나를 스스로 존중하고 높게 평가하는 거야."
나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그 가운데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지만, 남의 평가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아. 그저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뿐이야."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반면 자존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잘살다가도, 뜻밖의 부정적 피드백을 받거나, 자신의 정체성에 뒤늦게 혼란을 느끼면, 번아웃이 오거나 자신만의 자아를 찾고자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어."
"부모의 기대를 저버려요? 어떡해요?"
"선생님 지인 중, 미국에서 공부한 교포 2세 이야기야.
아들이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당당하게 의대에 합격했지. 그것도 미국에서 말이야. 그 아들은 집안의 자랑이었고, 부모에게는 나라의 인재로 훌륭하게 키운 애틋하고 절절한 보람이었어. 더할 나위 없는 뿌듯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아들이 중대 발표를 했어."
"어? 어떤 발표요?"
"한국에 가서 사진공부를 하고 싶다고... 부모님은 당연히 큰 충격을 받으셨지. 새하얀 가운을 입고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환자들을 진료할 거라 기대했었어.
그런데 아들의 그 한마디는 그동안 쌓아 올린 희망과 보람을 한순간에 무너뜨려 버렸어."
"아. 그건 좀 너무하네요. 저 같으면 그냥 의학공부 열심히 할 텐데요."
"바로 그거야. 여기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어. 얘들아, 별표 쳐! 스스로 동기 부여하고 노력한 것이 아닌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달려온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기 쉬워. 우리가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 남을 의식하지 말고, 오직 자신만을 소중히 여기면서 말이야."
“친구에게 일희일비하지 마. 현장체험학습 때도 주눅 들 필요 없어. 넌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밝잖아.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될 만큼 장점이 많은 아이야. 너만의 자존감을 가지면 돼.”
아이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른들의
사회에서도 완전히 다르지 않음을 종종 느낀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노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몇 해 전 '태움'이라는 단어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간호사들 사이에서 일어난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지속적인 정서적, 심리적 괴롭힘을 당하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사건은
우리 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주위를 보면 어려운 상황에도 평온하게 잘 지내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고요하게 지낼 수 있을까 싶지만, 자신의 생활에 작은 변화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다. 그것도 아주 잘.
속이야 부글부글 끓어 치밀어 오를지 알 수는 없으나,
외견상으로는 너무 차분하고 침착하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단순히 ‘멘털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라는 것을.
남과의 비교가 낳는 부정적인 감정에는 '비굴함'과 '교만함'이 있다. 스스로 열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비굴함을, 우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교만함을 품는다.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결국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자존심에 기대어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인품이 좋은 사람은 그 모든 것을 티 내지 않고 센스 있게 포장할 줄 안다. 있는 척, 아는 척, 예쁜 척, 겸손한 척을 과하지 않게 드러내는, 바로 그 포장 말이다.
고전이나 심리학이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높은 학식, 강력한 권력, 상당한 재력가들이 겸허와 겸손의 미덕까지 모든 것을 품기는 쉽지 않다. 타고난 인품이 아니라면, 이러한 좋은 책들을 통해 특별한 수양을 끊임없이 쌓아야만 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존심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래서 늘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예민하다. 부정적 피드백으로 인해 주눅 들고, 쉽게 짜증을 내며 스스로의 삶을 깎아내린다.
예를 들어, 비싼 돈을 들여 유럽여행을 가도,
자신보다 부유해 보이는 사람과 비교하며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내 아이가 90점을 받아도 기꺼이 칭찬해 줘야 마땅한데도, 100점 받은 옆집 아이와 비교하며 다그친다. 이런 모습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결국, 아이들에게 당연히 줘야 할 자유로운 사고와 경험의 기회를 빼앗는 행동이다.
이런 일이 왜 발생하는지 아는가.
바로 결핍 때문이다. 그 결핍이라는 것이 우리가 이미 충분히 가진 것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판단력을 흐리게 해서 온전한 사고를 방해한다.
그렇다면 결핍을 채울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해 보자. 글을 쓸 수 있는 노트북, 편안한 집, 아이스커피 한 잔, 은은한 음악,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무엇보다도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로운 연휴가 있다.
나는 지금, 마지막 목표인 책을 출간하는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결핍은 감사함으로 채워질 때, 그 공간은 더 이상 비어 있지 않다. ‘별것 아니었던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삶은 풍요로워진다.
비교는 비교하는 자의 몫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비교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집중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자신의 큰 목표대로, 소중한 의미를 담아, 귀중한 일상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