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우리 자신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걸까

무구한 허상을 동경했던 것일까?

by 장서방

나의 이야기

"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나 자신을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는 한평생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때로는 예상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때로는 갑작스럽게 사람과 사람은 이어진다. 하지만 누구나 어느 순간에서 인생은 결국 혼자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낀다. 그런데도 인생은 참 교묘하게 설계되어 있어 사람마다 생각이 겹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제작년 가을이었다. 힘들었던 재수 시절을 뒤로하고 입학한 대학에서 나는 그토록 원하던 일을 하나씩 경험하고 있었다. 단지 활발한 학교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큰 기대 없이 지원한 과대표에 당선되어 1년 동안 학생회 활동을 즐기며 지냈다. 여름방학에는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혼자서 자전거 국토 종주를 떠나기도 했다.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될 무렵 나는 내가 하고 싶던 모든 일을 경험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감이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뚜렷한 목표 없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모래성처럼 서툴게 쌓아 올린 나의 인간관계는 약한 파도 앞에서도 힘없이 무너져 내렸고 순간의 재미를 위해 떠난 수많은 여행은 나에게 채워질 수 없는 갈망을 일으킬 뿐이었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나의 편이 아니었고 생각 정리를 하지 못한 채 나의 새내기 생활은 끝이 났다. 스스로 "그래서 네가 정말 원하는게 뭐야?라고 하루에 열 번도 더 물어보았다. 물론 나의 외침은 언제나 메아리치듯 다시 나에게 돌아왔지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는 이미 공군인이 되어있었다.


입대하면서 나는 군생활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로 하였다. 오직 이것만, 이 한 가지 사실만을 알아낼 수 있으면 나는 미련 없이 군을 떠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나는 군 생활을 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경험하는 모험을 떠났다. 주말마다 여러 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풋살 대회도 참가하고, 자격증 시험에도 응시해 기록을 남겼다. 나의 내면을 알고 싶어 혼자 울릉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창업대회에도 참가하였다. 이렇게만 살면 되겠다고 생각하여 정신 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아홉 달이 지나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예전에 느꼈던 감정을 또다시 마주했다. 다시는 마주치기 싫었던, 아직도 도무지 설명하기 어려운 세글자 공허감. 여전히 뚜렷한 목표를 정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과 갈피를 잡지 못한 인간 관계는 나를 더 깊은 절망의 심연으로 끌여들였다. 「데비 챙」에서 "데비, 나는 다시 잘못된 기차에 탔어."라고 말하던 남희는 이런 심정이었을까? 난 그저 알고 싶었다.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나'라는 사람은 원래 이렇게 설계된 사람인 건지.




「애쓰지 않아도」

은영 작가는 이런 고민을 누구보다 많이 한 듯하다.「애쓰지 않아도」의 단편 소설들은 앞서 언급한 '생각이 겹치는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등장인물의 섬세한 감정 묘사는 나를 소설 안으로 끌어들였고 나는 여러 등장인물로 변한 뒤 나를 알아갔다. 소설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길 갈망한다.


「데비 챙」의 남희는 가족을 꾸리고 살고 싶다는 데비의 이야기를 듣고 그 순간 데비와 같은 꿈을 꿔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남희는 스스로 '사는게 팍팍하니까 그런 말랑말랑한 꿈 꿀 시간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계속해서 자문자답하며 결국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른 남희. 나는 지금 그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걸까? 자신을 이해하길 갈망하는 인물은「숲의 끝」에서도 등장한다. 핀란드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지호에게 솔직하지 못하게 행동한다. 마치 한국이 이곳보다 자신에게 훨씬 더 좋은 곳이고, 지호를 대체할 친구는 많다는 식으로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변화를 거부하며 사는 것이 겁이 많고 불안이 많은 '나'에게는 안전한 선택지였으니 '나'는 그게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건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 욕구와는 다른 길이었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계속 그런 식으로만 살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더라"라고 말하는 부분은 이 소설의 핵심을 관통한다. 이처럼 자기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과연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쉽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를 알아가기 위해서 우린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애쓰지 않아도」의 주인공이 학창시절 친구였던 유나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관계에 대한 조그마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중학고 3학년이 끝나고 이사를 하는 바람에 아는 얼굴이 하나 없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주인공은 유나와 친해지게 된다. 눈웃음이 예쁘고 외향적인 아이였던 유나는 주인공이 친해질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아이였다. 그런 유나가 자신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니 친구 그룹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조급했던 주인공은 유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애를 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둘은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주인공은 우연히 유나가 고등학고 시절 자신의 비밀을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단 사실을 알게 된다. 그제야 주인공은 유나를 의심하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며 오래전에 흘려야 했던 눈물을 흘린다. 주인공은 유나를 유나라는 사람으로 좋아했던 건지, 인기 있는 아이여서 선망한 것인지 헷갈려 한다. 주인공은 유나에게서 주인공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본 게 아닐까? 소설은 주인공의 독백으로 마무리 된다.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그 애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깊은 여운을 남겨주지만 명확한 해결책이 나온 것 같진 않다.「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에 송문과 유리를 살펴보자. 송문은 자신의 친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하고 유리는 그런 송문을 나무란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부부 사이인 그들이지만 송문은 마음을 다친다. 유리는 송문에게 "송문으로 살아온 송문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러나 그 순간 송문은 생각한다, 어쩌면 그 자신도 그 마음을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자기 마음을 배울 수 없고, 그렇기에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채 살아가는게 사람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항상 알고 싶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알게 되는 사건이 생길 것이라 믿었다.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선 내면을 들여다 봐야 하고, 이를 위해 혼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방식으로 나 자신을 이해하길 갈망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남들과 동떨어져 혼자 허상을 좇고 있었다. 마치「애쓰지 않아도」주인공이

유나를 동경한 것과 같이 말이다. 허상을 향한 동경은 나를 절망의 심연으로 끌어내렸지만 나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었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것은 충족되지 못한, 앞으로도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학창 시절의 동경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무구한 허상에 대한 동경을 내려놓기로 하였다. 세상을 혼자 살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 몇 달 전의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건 이제 아무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혼자가 되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이러한 생각 변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들은 너무나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고 나는 한 단계 나아간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나조차도 나로 살아온 나의 마음을 영영 배울 수 없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