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나는 또 한번 예전에 그 일이 있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사를 하러가기 전에 확답을 듣고 싶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어떠한 상황이 있어도 내 편을 들어야 된다고 얘기했고 이미 남자친구는 그걸 실천하고 있었다.
그 당시 그는 가족들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반대하자 집을 나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세게 나올지 몰랐지만 그의 입장은 확고했다.
'나는 성인이니까 내 결혼은 내가 알아서 하는거야 그 책임도 내가 지는거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 여태껏 만나서 파혼했던 남자들은 부모님이 뭐라고 하면 바로 꼬리를 내리고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는데 그는 시어머니가 뭐라고 했을 때 당당하게 얘기했다.
성인이란 내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때야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님이 해결해주거나 그러지 성인은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에게서 이런 모습을 많이 보았고 더욱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게 완벽해 보였는데 지금은 애들 재우고 게임하느라 바쁜 아빠가 됐다 ^^)
시어머니는 역시나 나에게 뇌전증과 아이에 대해서 물어보셨고 나는 이번만큼은 휘둘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대답했다.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결혼을 승낙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기가 너무 세고 뇌전증이 있어서 안되겠다고 남자친구에게 결혼은 안된다고 했다. 거기까지는 전에도 겪어봤던 레파토리라 예상을 했다. 그러나 이번 남자친구는 달랐다. 그는 그 얘기를 듣고 집을 나왔다. 그러고는 아이가 생기면 명절마다 한 번씩은 찾아뵙겠다고 했다.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걱정했지만 그의 마음은 한결 같았다.
'내가 선택한 결혼을 부모님이 반대하는 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부모님이 나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결국 선택은 나에 몫이다.'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한다. 결국 시어머니는 불같이 화내다가 한의원에 다니시고 그리고 홧병나서 쓰러지겠다며 남자친구에게 왜 그러냐고 했지만 결국 결혼 허락을 받아냈다.
한참 후에 얘기지만 홧병나서 쓰러지겠다던 시어머니는 내가 쌍둥이를 데리고 방문하셨을 때 너무 고생했다고 하면서 남편보다 나를 더욱 챙겨주셨다.
'내 아들은 알아서 잘 먹으니까 괜찮다 엄마가 건강해야 돼' 라며 주말마다 아이를 봐주러 오셨고 나한테 뇌전증 때문에 쓰러지면 안되니 항상 쉬라고 해주셨다.
다시 돌아보면 결혼 과정이 다른 사람보다는 순탄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내 장애를 피하지 않았고 내 남편 또한 그걸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장애인으로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이런 것 같다. 나만 하는 게 아니라 같이 장애를 안고 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결혼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혹시라도 뇌전증을 가진 사람이나 혹은 나와 같은 불치병을 가진 사람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내 얘기를 꼭 해주고 싶다. 그리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