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를 위한 변명

7. 이만삼천원

by 문영

내가 참여하고 있는 문학단체 인터넷 카페 첫 페이지에 아주 재미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다. 봄꽃이 만발한 4월의 토요일 오후, 회원들과 같이 귀향한 원로 시인 댁을 방문하여 찍은 기념사진인데, 모두 함박웃음을 웃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사진 속에서 박 여사의 목소리가 금방 튀어나올 것 같다

'이만 삼천 원'하고

박 여사는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고, 카메라의 타임 버튼을 누르고 금방 달려와 포즈를 취한 김교감 선생님은 그런 박 여사를 쳐다보며 웃고 있다. 우리가 카메라의 렌즈를 향해 웃음을 터트린 순간의 모습이다.

'김치~'하며 웃음 짓고 있던 입꼬리가 경직되어 가고, 눈 감은 모습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깜빡거리지 않고 크게 뜨고 있던 눈이 부셔 눈물이 고이려 할 때였다. 박 여사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풍선이 터지듯이 모두 동시에 웃었기 때문에 사진을 망친 줄 알고 다시 한 컷을 찍었는데, 망쳤다고 생각한 사진이 이렇게 모두 행복한 모습으로 찍혔을 줄이야.

박 여사네는 목재상을 경영하고 있는데, 남편이 물건값을 잘 몰라 밖에 나온 그녀에게 값을 묻는 전화였다. 박 여사는 자기의 통화 소리 때문에 웃음 바다가 되어버린 것을 계면쩍어 하며, 가게 일에 관심이 없는 남편 때문에 화가 난다고 푸념을 했다. 목재를 사러 온 사람을 앞에 두고 전화로 아내에게 값을 묻는 그녀의 남편 얼굴이 떠오른다. 아니, 똑같은 모습을 한 내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도 시골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나대로의 일이 있어서 밖으로 나돌기 때문에, 물건을 구입하고 판매하는 일은 남편이 도맡아 한다. 본래 셈속이 어두운 내가 물건값 계산을 잘못하여 돈을 덜 받는 일이 두어 차례 있고부터 남편은 나를 믿지 못하는 눈치다. 내가 물건을 팔면 다시 계산해 본다. 그 뒤부터 계산은 남편에게 미루어버렸다. 나는 셈속뿐만 아니라 수에 대한 기억력조차 부족하여 물건값을 알려주어도 그때뿐이다. 물가 변동이 심하고 상품에 정가를 써 놓지 않은 것이 많은 데다, 똑같은 품목도 싸게 구입한 것은 싸게 파니 값이 들쑥날쑥하다. 기억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늘 남편을 부르며 값을 묻는다. 마치 박 여사의 남편처럼.

남편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 손님이 값을 물으면 나는 큰 소리로 이거 얼마냐고 묻는다. 남편이 밖에 출타했을 때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다. 처음 우리 가게에 온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그래서 대충 짐작해서 값을 받을 때도 있다. 어느 때는 터무니없이 싸게 받기도 하고, 더 받기도 한다. 잘못 계산한 물건값은 적어두었다가 후에 정산하기도 하는데, 얼마라도 찾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비해 더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연히 남편이 출타하면 걱정이 된다.

나는 늘 남편이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더없이 착하고 곧은 사람이지만 부지런히 일하는 것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조차 없다고 못마땅했다. 그러나 계산도 잘못하고, 알려주어도 물건값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나를 남편도 한심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팔을 걷어붙이고 같이 돕는 여자였다면 남편의 삶은 좀 더 편하고 안락했을 것이다.

원로 시인 댁을 나오며 누군가 다음 세상이 있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만나 살고 싶은지 물었다. 학원을 경영하는 차 여사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싫다고 한다. 인연이 되어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살지만 만족하는 부부는 그리 많지 않은가보다. 좋아서 만난 사람도, 나같이 덤덤하게 만난 사람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니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러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나이가 되니 다음 세상에 다시 만나고 안 만나고를 떠나서 길지 않은 지난 세월 동안 크게 불행했던 일없이 무사하게 살아온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앞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 행 불행을 따지기보다 박 여사의 남편처럼 '이거 얼마여?' 하고 물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살면 되리라. 그런데 이만 삼천 원짜리 목재는 얼마만 한 크기일까? (2012. 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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