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방
대부분의 집에는 방이 여러 개 있다. 용도에 따라 거실, 침실, 공부방이 있고, 주방, 서재, 다용도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예전에는 사랑방, 머슴방도 따로 있었다.
예전에는 방의 수가 적고 크기마저 작아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삼대가 같이 모여 사는 집이 허다하여 한 방에 여러 식구가 같이 생활하였다. 모든 자재가 귀하고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이어서 집을 짓는 것도 문제였겠지만 연료 문제도 만만치 않아 집을 그리 작게 짓고 살았지 싶다.
좁은 집 단칸방에 대여섯 식구가 오밀조밀 사느라 불편한 점이 많았으나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부터 따뜻해지고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보면 딱히 그렇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고향에 다시 돌아와 친척 집 아래채의 작은 단칸방에 이삿짐을 푼 우리 식구들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친척 집이니 집세 못 내도 나가라 하지 않을 테니 안심이 되었다. 일터와 학교에서 돌아와 여섯 식구가 지친 몸을 눕힐 수 있는 아랫목 따끈한 방이 있어서 좋았다. 아궁이에 밀어 넣은 청솔가지 연기가 방바닥 틈으로 새어 나와 방안이 온통 연기로 가득 차도 상관없었다.
식구 중에 이상한 눈치가 조금만 보여도 아버지로부터 막냇동생까지 죄다 알아차리게 되니 사춘기의 기복 심한 감정은 발을 내밀어 보지도 못했다. 아니 조금만 이상해도 빨리 알아차리고 안으로 깊숙이 농이 자리 잡기 전에 부모님은 고름을 짜주고 형제는 약을 발라주었다.
서너 해 뒤 세 칸짜리 집으로 이사 갔지만 방이 하나였을 때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뒤척이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한지 바른 미닫이문은 있으나 마나여서 서로의 속내를 훤히 알 수 있었다. 밤에 도둑 들까 싶어 장지문을 잠글 때 외에는 이웃 사람도 아무 때나 벌컥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곤 했다. 가난한 가족들이 지켜보는 그 좁은 방에서 동생이 태어났고, 가족들의 애통함을 뒤로하고 어머니가 그 방에서 숨을 거두셨다. 어려움과 슬픔을 쉽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같이 나누었기 때문이지만 흙과 나무로 만든 초라한 방이 우리를 품어주고 안아 준 때문이리라.
탄생의 장소도, 영면의 장소도 될 수 없게 된 뒤부터 방은 폐쇄된 공간이 되어버렸다. 벽과 문은 성채처럼 단단해졌고, 소리도 빛도 새어나가지 않는다. 문을 걸어 두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 되어버린다. 음지에서 사는 식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마디도 없고 속으로 살찌우는 법을 몰라 살짝만 밀어도 휘청거리다 끝내는 휘어지거나 꺾어지고 만다. 어떤 이는 그 방 안에서 농축되고 침전되어 끝내는 독으로 변질된 외로움에 제 자신을 갉아 먹히기도 한다.
방에 스스로를 가두었단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밖으로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노래방에 들어가 같이 어울려 목청이 터져라고 노래를 불러대는가 하면, 연기 자욱한 피시방을 찾아 가상의 공간 속을 헤매는 젊은이들도 있다. 그 외에 찜질방도 있고, 디브이디 방이 있다. 그중에는 퇴폐적이라고 문제가 된 방도 있지만 한창 성업 중인 방도 있고, 이제는 사양산업이 되어버린 방들도 있다. 외로운 현대인이 위로받고 싶고, 같이 어울리고 싶어 찾은 공간이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작은 방이다.
옆에 남편이 잠들어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참 많이 늙었다. 남편과 내가 부부로 한방에서 살기 시작한 지도 40년이 가까워 온다. 남편의 숨소리가 잦아들더니 한참 동안 숨 쉬는 기척이 없다. 불안한 생각이 밀려오려는 바로 그때 '후-'하고 깊은숨을 토해낸다.
방바닥의 온기가 등에 스며들고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살아낸 오늘 하루가 이 작은방의 어둠 속에 잠들어 간다.
(2011.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