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는 사람
객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절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몰랐던 사람도 고향이 같거나 출신학교가 같은 것을 알게 되면 금방 가까워진다. 하다못해 성씨만 같아도 친밀감이 느껴지는 것은 객지라는 환경적 요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당장 현금이 필요한데 돈이 없으면 아는 사람에게 융통하게 된다. 적은 돈이라도 아는 사람이 아니면 빌려 달라고 입조차 뗄 수 없다. 우리는 아는 사람들끼리 도움을 주고받으며 어울려 살아간다. 모르는 사람도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관계를 맺으며, 아는 사람을 만들어 살아가는 것이 사람살이가 아닐까.
며칠 전에 유치원에 갔다가 아이들이 부르는 유괴 예방 노래를 듣고 퇴직하기 전에 썼던 졸필이 떠올랐다. 그때도 아이들이 '아는 사람'에 의해 참담한 일을 당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나는 아이들에게 친절한 이웃도 따라가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때 한 아이가 이웃에 사는 고모부도 따라가면 안 되냐고 물어서 대답을 못하고 허둥댔던 일을 '친절한 이웃'이라는 졸필로 표현했었다. 그런데 세상은 더 험악해졌고, 아이들은 주문처럼 유괴 예방 노래를 부르며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키워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은 이웃 사람이 친절을 베풀면 두려움에 떨기부터 할 것이고, 허리 굽은 늙은이가 길을 물어도 무서워 달아날 것이다. 그리할 수밖에 없는 세상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나는 유치원에 가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이들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듣는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인 듯하다. 불쌍한 노인을 도와주고 신기한 부채를 얻어 부자가 된 착한 젊은이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아이들은 자신이 남을 도와준 착한 젊은이가 된다. 몸을 다친 불쌍한 도깨비를 황소의 뱃속에 들어가도록 도와준 나무꾼이 나중에 큰 부자가 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아이들은 도깨비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주어야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에 빠져 있는 그 자리에서뿐이다.
나는 아이들이 부르던 유괴 예방 노래가 생각나서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길을 물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가르쳐주면 안 돼요."
엄마 아빠가 '도와줘라. 따라가도 된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다부진 목소리로 대답한다. 이상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중에 노인이 없지 않은 것으로 봐선 아이들의 말이 맞다. 아는 사람도 따라가선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도 아이의 질문에 당황했던 내가 '너희들 말이 맞다. 부모의 허락 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말고, 아는 사람도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라며 재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 그렇게 배우고 있는 우리 아이들도 불쌍하다. 이 아이들을 학교 밖에서 만났을 때, 부모의 허락 없이는 내 옆에 오지도 않을 것 같아 서글프다.
요즈음 아이들은 귀하게 자라서인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아직 사회성이 발달되지 않은 때문이겠지만 내 것을 잘 챙기면서 가진 것을 친구에게 조금도 나누어 주려 하지 않는다. 이기적이 되어가는 아이들에게 아는 사람도 믿지 말고 도와주지 말라고 가르친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아는 사람도 믿지 못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을 것이며, 도움도 청하지 못할 것이다. 손만 내밀면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데 사람에 대한 두려움부터 배운 우리 아이들은 혼자 외롭고 힘들어할 것이다.
2학기가 시작되면 나는 다시 옛날이야기 책을 들고 유치원에 갈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 밭에 사람에 대한 믿음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남을 도울 줄 알고 불쌍한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복을 받아 행복하게 살았다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때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사람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세상에 무서운 사람만 들끓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겠다. 그리하면 아이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사람에 대한 신뢰의 씨앗이 한 톨이라도 자라지 않겠는가.
우리 아이들이 아는 사람을 많이 만들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꿈꿔본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