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파리를 잡으며

by 문영

어제는 토요일이었다. 일요일의 휴식을 보장받은 날이다. 나는 새벽까지 책을 읽다가 잠을 놓치고 말았다. 그 때문인지 점심을 먹고 난 뒤부터 연신 하품이 난다. 마침 아들 녀석이 베개를 내어놓으며 잠깐 눈을 붙이라고 한다. 바람 한 점 없이 습기를 잔뜩 머금은 장마 더위가 삼복 못지않게 숨 막히게 한다. 금방 찬물을 끼얹었는데도 땀이 끈적인다. 자리에 누우니 등에 닿는 방바닥의 냉기가 나쁘지 않다.

잠이 들만하니까 땀이 끈적거리는 살갗 위로 파리란 놈이 슬금슬금 기어 다닌다. 손으로 휘저어 쫓고 돌아누웠으나 금방 다시 또 앉는다. 선풍기의 버튼을 강풍으로 눌러놓고 누웠는데 이번에는 바람이 덜 닿는 종아리에 앉아 기어 다닌다. 차라리 모기라면 손으로 한번 쳐버리면 얼얼한 느낌 때문에 물린 아픔도 잊히는데, 이건 손바닥으로 쳐봐야 내 살만 아프지 파리란 놈의 잽싼 동작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리고 날아간 놈이 금방 제자리로 돌아와서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기분은 아주 불쾌하다. 파리란 놈도 더위에 지쳐서 날 수 있는 기력을 잃고 시원한 곳을 찾아 기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아예 일어나서 파리채를 찾아들었다.

여름은 덥고, 더위에 약한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더위 때문에 내 땅에서 나는 쌀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더위를 내 것으로 끌어안으면 그냥저냥 참을 만하다. 그런데 파리모기 같은 해충들은 아주 질색이다. 국가의 재정 때문인지 요근래는 보건 당국에서 해주는 방역 횟수도 바짝 줄어서 해충들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모기란 놈은 경고음을 내면서 주로 밤에 극성을 부리니, 모기장을 치고 그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그런대로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파리란 놈은 사람을 쫓아다니며 아주 귀찮게 군다.

그놈은 출생지부터 더럽고 지저분한 곳이다. 그 유충의 생김새와 사는 곳을 생각하면 더욱 역겹다. 그렇지만 그놈들이 지렁이들과 같이 폐기물의 일차 분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어른이 된 놈의 모습은 흡사 매미를 축소해 놓은 듯 날렵한 모양을 하고 있다. 앞다리로 몸을 지탱한 채 뒷다리로 바짝 치켜든 엉덩이와 날개를 단장하거나, 뒷다리로 앉아서 나머지 발로 머리와 눈자위를 자꾸 매만지는 놈의 모습은 얄밉기까지 하다. 가벼운 날개, 적을 살피기 위한 여러 개의 눈, 그리고 먹이를 깊이까지 빨아들이기 위한 빨판. 작은 몸체지만 겉으로 봐서는 유충 때의 역겨운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돋보기로 본 파리의 가느다란 다리에 무수히 나 있는 흉측스러운 털, 그리고 그 털에 붙어 다닐 것 같은 더러운 세균들, 생각만 해도 더럽다. 그러나 음식에 파리가 앉았을 때 우리는 손을 휘저어 쫓는 것으로 그친다. 그놈은 분명히 오물 구덩이에서 날아왔을 것이고, 내가 먹을 음식에 미세하겠지만 오물 한 덩어리를 묻혀 놓고 갔을 텐데. 그놈이 오물에 앉아 있을 때보다 덜 더러워 보이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한다’고 생김새 덕을 보는 셈이다.

녀석은 오물 위에서도 몸을 더럽히는 법이 없다. 가느다란 발로 살짝 앉아서 저 취할 것만 취하고 나면, 두 발로 입과 엉덩이를 깔끔하게 씻어내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더구나 뒷발 두 개를 살짝 들어 올려서 파리채를 든 나를 비아냥거리듯이 자꾸 비벼대는 모습은 아주 얄밉기까지 하다.

나는 낮잠을 놓쳐버린 화풀이를 하듯 파리채를 들고 놈들을 쫓아다녔다. 식탁의 가장자리에 한 놈이 앉아서, 슬금슬금 기어간다. 잡기 편한 쪽으로 움직이면 잡아야겠다고 겨누고 있는데 요놈이 내 거동을 눈치챈 모양이다. 포르르 날아서 내가 들고 있는 파리채 끝에 앉는 것이 아닌가. 파리채를 흔들어 쫓아서 좋은 자리에 앉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런데 잠시 후 그놈인지 다른 놈인지 분간되지는 않지만, 식탁의 가장자리에 다시 앉는다. 허실 삼아 파리채를 내리쳤으나 예상대로 놓치고 말았다.

이번에는 잡기에 알맞은 자리에 앉은 놈을 찾아냈다. 마침 파리채로 내려치려고 하는 찰나에 날아가 버려서 낭패다 싶었다. 그런데 곧바로 그 자리에 다른 놈이 앉는 것이 아닌가. 전에 앉았던 놈은 엉덩이가 작았는데, 이번 놈은 알을 잔뜩 뱄는지 엉덩이가 크다. 다른 놈이 분명하다. 조금 전의 파리란 놈은 용케도 죽음을 모면했으나 다른 놈이 대신 죽음의 자리로 날아 온 것이다. 파리 사냥을 시작한 내가 대신 온 놈이라고 사정을 봐줄 리 만무다.

파리를 놓쳤으면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대부분 제 발로 다시 호구로 찾아드니까. 사람도 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실수를 되풀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냥 좋은 기회만을 노리고 붙잡지 않으면 영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려서 기회를 놓치고 마는 때도 있다. 좋은 기회를 한없이 기다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놈들은 또 잡기 곤란한 곳을 잘도 알아보고 골라 앉는다. 잠자는 아들놈의 뺨, 남편의 등, 차려놓은 음식 위, 그리고 뾰족한 병의 주둥이, 그런 경우는 쫓아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파리채로 내리쳐야 내 쪽에서 낭패를 보게 마련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물이지만 그런 곳을 용케도 알아서 앉는 것을 보면 놈들이 생존하고 번식해 가는 기술을 터득한 때문이리라.

나는 파리 몇 마리를 잡았다. 한 놈씩 파리가 잡힐 때, 귀찮은 녀석들을 잡았다는 생각에 약간 잔인한 쾌감을 느꼈다. 늘어난 노획물에 흡족하고 빗자루로 쓸어내려는데 그중의 몇 놈이 가볍게 날아가 버린다. 죽은 놈들 속에 은신하고 있었는지, 죽은 제 동족의 주검 속에서 저 취할 것을 취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저만큼 도망쳐 기어가고 있는 놈은 엉덩이가 짓이겨졌는데 용케도 살아서 도망가고 있다. 그놈은 나를 알아차렸는지 신문지를 쌓아놓은 구석 틈으로 잽싸게 숨어버린다. 파리 목숨이라는 말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찮은 목숨이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러나 파리 목숨도 상당히 질기다.

추한 곳에서 아주 못된 행동을 일삼아 이권을 챙긴 위인들이 지위가 높아지면 못된 일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경우를 간혹 본다. 까치발로 걸어 다니며 몸을 더럽히지 않고 제 실속을 차리는 파리의 모습에서 사람의 숨은 얼굴을 발견하는 것은 나의 지나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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